홍콩영화가 예전 같지 않다. 산업적으로 흥성했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중국의 영향아래 있는 현재는 초라하다.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사천왕' 스타도 없고 우위썬 같은 유명 감독도 부재한다. 적어도 한국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그래도 세계 영화계는 여전히 홍콩을 주목한다. 2000년대 가장 눈에 띄는 홍콩 감독은 두치펑이다. '우견아랑'과 '지존무상2' 등의 상업영화를 만들며 홍콩영화계에서 살아남은 이 감독은 어느 순간 유명 영화제가 사랑하는 대가가 됐다.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맵게 풍자한 '흑사회'시리즈가 국제적 명성의 토대였다. 범인의 심리 파악을 위해 사건을 다시 체험해보는 미치광이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매드 디텍티브'(2007)도 그의 수작 중 하나다.
두치펑의 영화에 열광하거나 홍콩영화의 향수를 지닌 관객은 아마 최근 VOD서비스를 시작한 그의 최신작 '블라인드 디텍티브'를 적지 않게 반길 것이다. 동시에 당혹감도 느낄 듯하다. 눈이 멀어 오직 후각으로 사건 개요를 추정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총(류더화)의 활약상이 엉뚱한 우스개 위로 펼쳐진다. 비슷한 제목의 '매드 디텍티브'가 어둡고 진지하기만 한 작품이었다면 이 영화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들로 난감함을 전한다. 두치펑의 평작이라 할 수 있으나 범상치 않은 장면들도 여럿이 있다. 완성도 높은 액션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저우싱츠의 별난 유머에 익숙한 홍콩영화팬들이라면 더 흔쾌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다. 15세 이상 시청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