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본능일까, 아니면 발명된 인류의 산물일까. 출산과 양육의 의무는 여성의 삶은 물론 사회의 건강한 재생산을 위해 온전히 여성의 어깨 위에 올려져야 타당할까.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5년 독일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출산율 감소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근대를 만든 자본주의에서 배태된 핵가족이 더욱 축소지향의 길을 걸으면서 당시 독일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급히 찾고 있었다. 여성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선 출산의 시작점인 모성애의 본질을 알 필요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답과 거의 같은 것이다.
책은 모성애야 말로 근대화가 빚어낸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본능이 아닌, 사회가 부과한 의무라는 얘기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저자는 산업사회 이전 여성은 현대사회 여성이 지닌 것과 동일한 모성애를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전근대시절 이른바 경제공동체 안에서 출산은 노동력 보충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단지 살아남을 정도로만 보살핌을 받고 심지어 방치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근대가 시작되면서 경제성장을 최대한 가속하기 위해 자유로운 시장과 더불어 남성 노동자들의 재생산능력 회복을 돕는 평화로운 안식처로서의 가족이란 공간이 필요해졌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온순하고 겸손한 성정의 여성에게 사회는 양육과 출산의 부담을 몰아준다. 신분이 상속되지 않는 사회가 되면서 더욱 중요해지는 아동의 교육마저 여성의 몫으로 돌아온 것은 물론이다. 더욱 개인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는 부담마저 여성에게 쏠리고 급기야 아무에게나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현대적 모성애가 발명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권유하는 사회는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위해 모성애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40년 전 독일의 저작은 지금 한국의 현실과 너무 잘 맞는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하고 민간보육시설 활성화 방안을 내놓는 정도로 저출산 문제에 맞서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가늠케 한다. 벡 게른스하임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더 평등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이 엄마라는 딜레마와 모성애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남성과 나눠 가질 때, 출산 후 여성만이 삶 전체를 바꿀 결심을 해야 하는 지금의 부조리를 수정할 때, 한국 사회는 더 많은 구성원의 출산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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