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창간된 '파리 리뷰'는 그 이름과 달리 파리가 아니라 뉴욕에서 발행되는 문학 계간지다. 여기 고국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도 잘 모르는 판에 무슨 미국 잡지까지 섭렵할 일 있나 싶겠지만, 외국의 유명 작가를 심중에 깊이 품어본 독자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잡지다.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들, 그러니까 밀란 쿤데라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이들의 인터뷰를, 그것도 수십 개의 질문에 수십 쪽에 육박하는 답변으로 이뤄진, 기본 1박2일에 걸쳐 진행된 '심층 인터뷰'로 볼 수 있는 거의 독보적인 잡지이기 때문이다.
는 2013년 겨울호로 지령 207호까지 나온 '파리 리뷰'의 작가 인터뷰 250여편 중 12편을 골라 묶은 책이다. 출판사는 '파리 리뷰'에 인터뷰가 실린 250여명의 작가 중 국내에 작품이 소개된 79명을 추린 후 국내 문예창작과 대학생 100여명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를 묻고, 잡지 측과 협의한 뒤 1위부터 36위까지를 세 권의 선집으로 펴내기로 했다. 는 그 첫 권으로, 목차의 작가들은 요샛말로 '후덜덜'하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 M. 포스터. 이 쟁쟁한 거장들의 육성을 듣고 맨 얼굴을 보는 일은 분명 횡재다.
창간 60주년을 넘긴 잡지인지라 인터뷰 시기는 들쭉날쭉하다. 가까이는 2008년 여름에 만난 에코와 각각 2004년과 2005년 인터뷰한 하루키와 파묵이 있고 멀게는 1956년 뉴욕에서 만난 포크너와, 샌프란시스코 작업실에서 인터뷰어에게 '지루하고 어리석은 질문'이라며 온갖 신경질을 쏟아내고 있는 헤밍웨이에까지 거슬러 간다. 잡지 측이 엄선했다는 인터뷰어는 저널리스트, 교수, 작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등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소설의 구체적 테크닉을 논하는 작가론 내지는 창작론으로 분류될 수 있을 테지만 다른 시공간의, 다른 스타일의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나면 하나의 뚜렷하고도 공통된 명제가 가슴 속에 남는다. '성실만한 재능은 없다'는 것.
마르케스는 고통이 좋은 글을 낳는다는 낭만주의적 개념에 반대하며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한다"고 말하고 로스는 "저는 하루 종일 글을 씁니다. 아침, 오후,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라고 사무원처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글쓰기의 진짜 작업은 초고가 아니라 초고의 수정이라는 데도 한 목소리다. 알코올의존증에서 힘들게 빠져 나온 카버는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열 개나 열두 개 이하인 경우는 없답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루키도 "초고는 엉망진창이거든요. 고치고 또 고쳐야 해요"라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의 마지막 장면을 서른 아홉 번이나 고치고서야 만족했다. 일필휘지란 없다는 것, 보통의 독자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할 요소다.
인터뷰는 작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듯 생생하다. 창가 책장 위에 타자기를 두고 언제나 서서 글을 썼던 헤밍웨이, 몸에서 흘러 나오는 말을 종이에 새겨 넣기 위해 손글씨로 글을 쓴 후 '손가락으로 책 읽기'인 타자기 수정작업을 하는 오스터, 워드프로세싱이 생각하는 것 그 자체에 더 가까운 내면적 수단이라 여기는 매큐언 등 작업 스타일도 각각이다.
이 유명 작가들은 무명의 시기, 한결같이 최고의 작품을 쓰겠다는 야심으로 내면을 점화했다. 마침내 유명해졌을 때, 그러나, 이들은 명성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 분투를 벌인다. 명성은 '개인적인 삶을 침해'하고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_첫 번째 책이 출판되고 상을 받았을 때 다른 작가들도 만나기 시작했습니까.
"아니요, 전혀."
_당시에 작가 친구는 없었습니까.
"한 명도 없었습니다."
_나중에 친구나 동료가 된 작가가 있습니까.
"아니요. 한 명도 없습니다."
_오늘날까지도 작가 친구는 한 명도 없나요.
"없다고 생각돼요."
_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사람도 없습니까.
"전혀요."
오로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도쿄에 살고 있다는 하루키의 인터뷰 일부다. 작가들이란 고의적으로 고독하고, 그 고독 속에서만 행복하다.
거장들의 유머도 곳곳에서 빛난다. 인터뷰 당시 76세였던 에코는 다섯 권의 소설 속에서 성적 묘사가 이뤄진 장면이 딱 두 군데뿐이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성에 대해 쓰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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