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흥행 질주로 언론에서 덩달아 호명되는 영화들이 있다. '괴물'(2006)과 '도둑들'(2012)이다. 두 영화는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수식된다. 과연 '변호인'이 이들을 넘어서 한국영화 흥행 왕좌에 오를 수 있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최고 흥행작으로 두 작품이 입에 오르니 관객은 의아할 수 밖에 없다. 왕좌는 하나뿐인데 두 영화가 서로 왕이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하는 최고 흥행 한국영화는 '괴물'이다. 영진위 공식 통계에 따르면 '괴물'의 관객은 1,301만9,700명이고, '도둑들'은 1,298만3,300명을 모아 '괴물' 뒤를 잇고 있다. 두 영화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는 다른 수치를 제시하며 '도둑들'을 최고 흥행작으로 꼽는다. 쇼박스 자체 집계에 따르면 '도둑들'은 1,303만1,788명으로 '괴물'을 근소하게 제쳤다.
최고 흥행작이 둘인 우스꽝스러운 현실은 한국영화의 후진성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영화계의 흥행 지표는 서울의 단관 극장 관객 수로 판단했다. '서편제'의 103만 관객은 서울 단성사 한 곳에서 거둔 흥행 성적표다. 서울 이외 지역 관객은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쉬리'(1998)로 전국 동시개봉이 본격화되면서 배급사에 의해 전국 단위 관객이 집계되기 시작했다. 관객수가 바로 전산망에 입력되는 영진위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은 2004년에야 가동됐다. 그러나 통합전산망에 가입한 극장이 많지 않아 문제였다. '괴물'이 개봉한 2006년 통합전산망에 합류한 전국 극장은 80%가량에 불과했다. 영진위가 배급사가 극장마다 파견한 직원이 일일이 센 '괴물'의 관객 수를 공식 통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이유다. 가입률이 99%를 넘자 영진위는 2011년부터 통합전산망 수치만을 공식 통계로 인정하고 있다. 통합전산망에 가입하지 않은 극소수 극장의 관객 수가 빠지면서 '도둑들'은 공식적으로 '넘버2'가 됐다. 예전 방식대로라면 '도둑들'이 '떳떳이' 1위를 자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변호인'이 1,302만명 선에서 흥행 행진을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진위는 '변호인'의 최고 흥행작 등극을 공식 인정할 것이고, 일부에선 '도둑들'을 여전히 흥행 왕으로 부르는 혼란스러운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설령 '변호인'이 1,304만명 넘는 관객을 모아도 2위 자리를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통계는 모든 수식의 근거다. 영진위든 배급사들이든 '진짜' 흥행 집계에 대한 중지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최고 흥행작에 대한 혼선은 지난해 연간 2억 관객시대를 맞은 우리 영화계의 치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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