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니게 양보 논쟁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불은 안철수 의원이 지폈다. 서울시장 선거, 대선에서 양보했으니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 받아야겠다는 것. 이에 박원순 시장이 장작을 얹었다. 시민이 원한다면 백 번이라도 양보하겠다고. 기존 정치문법과는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기름을 부었다. "서울시장 자리가 당신들 전유물이냐", "구태 정치"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 선거에서 양보는 가능할까. 한마디로 어렵다. 큰 자리일수록 그렇다.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나 세력 차이에 따른 연대는 있었지만 순수한 양보는 거의 없었다. 현대 정치사의 두 거목인 YS, DJ조차 민주세력의 집권 기회였던 1987년 대선 때 상대의 양보만을 요구하다 단일화하지 못해 패배한 바 있다. 안 의원 말마따나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자신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데도 5%의 박 시장에 후보를 양보한 것이 유일한 사례다.
■ 우리가 도덕교과서에서 배웠던 양보의 미덕은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국민들은 양보하지 않은 자를 벌주고, 양보한 자를 나중에 밀어주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YS, DJ가 단일화 실패에 따른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각각 3당 합당, DJP 연대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결국 대권을 쟁취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한 선거분석 책자의 제목처럼 현실 정치에서 양보보다 권력의지가 더 도드라진다.
■ 안 의원도 이를 깨달은 것일까.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권력의지가 강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DJ, YS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런 희생이 권력의지와 결합해 국민 지지를 이끌어냈다. 안 의원은 그 정도는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일방적 후보 사퇴와 미온적인 지원으로 단일화를 망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안 의원의 양보론은 설익은 느낌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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