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학교나 병원만큼 중요한 공적 영역입니다. 교육의 일부이기도 한 음악은 삶의 질을 높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는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공기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지난해까지 12년 간 음악감독을 맡았던 미국 휴스턴 심포니를 비롯해 북미와 유럽 오케스트라를 두루 지휘한 오스트리아 지휘자 한스 그라프(65)의 오케스트라 경영 철학이다. 휴스턴 심포니 명예지휘자인 그는 뉴욕 필하모닉, LA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등 주요 미국 교향악단을 지휘해 왔다. 유럽에서는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등을 거쳤다.
20일 만난 그는 두 대륙 오케스트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미국 오케스트라는 사적인 영역에 속해 리허설 한 번 더하는 데도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지휘한 미국 오케스트라는 경험이 풍부한 단원으로 구성돼 있어 리허설 부족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산을 자립하려고 노력도 많이 기울여야 하고 관객 유치를 위해 프로그램도 보수적으로 짜야 하죠. 반면 영국을 제외한 유럽은 공적 지원이 확실히 보장돼 있습니다."
물론 그가 이처럼 음악 공익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민간단체인 미국 오케스트라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는 휴스턴 심포니 역대 지휘자 중 가장 오래 활동한 음악감독이다. 독창적인 프로그램 구성에 능했던 때문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관객을 유인하되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매년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는 것도 중요하죠. 2010년에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과 미항공우주국(NASA)의 영상을 결합한 비디오 프로젝트로 카네기홀 무대에 섰던 일이나 2003년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바탕으로 한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의 음악 등을 시리즈로 연주한 게 단적인 예입니다."
세계일주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악단과 함께 한 그는 리더십 노하우로 "깊이 있는 음악지식"을 꼽았다. "아름다운 음악은 강요에 의해 구현되는 게 아닙니다. 연주자를 설득하는 게 나의 중요한 역할이고, 그러자면 정확하고 분명한 음악 지식이 바탕이 돼야겠죠." 그는 또 "좋은 음악은 좋은 영혼에서 나온다"며 "토스카니니 같은 권위적 리더십이 아닌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2012년 서울시향과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던 그는 23일 말러 교향곡 10번으로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난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스베틀린 루세브)과 함께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이 완성한 말러의 미완성 작품 교향곡 10번을 지휘한다. "젊고 열정적이며 집중력 있는 오케스트라"로 서울시향을 기억하는 그는 이번 공연에도 기대가 크다. "말러가 청중을 즐겁게 하려 하기 보다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았기에 그의 교향곡은 어렵지만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던 그는 "드뷔시와 라벨, 버르토크, 스트라빈스키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휘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피아노곡도 아름답지만 관현악곡 레퍼토리의 세계는 바다만큼 넓고 깊으니까요. 청소년기에 갈망했던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하고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