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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간 한편의 누아르 영화 보는 듯 '박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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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간 한편의 누아르 영화 보는 듯 '박진감'

입력
2014.01.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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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짓는 죄는 비단 연쇄살인이나 테러 등 굵직한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상식의 영역 안에 남아 있으면서, 가랑비에 젖듯 눈에 띄지 않게 선한 이를 서서히 범죄자의 영역으로 몰아가는 죄의 파편들은 사방에서 날아든다.

연극 '스테디 레인'(키스 허프 작)은 창문을 뚫고 날아든 그 죄의 파편에 맞으며 어느 날 선인에서 악인으로 자리 옮김하게 된 두 경찰의 이야기이다. 2007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한 이래 할리우드 최고 스타인 휴 잭맨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출연하면서 브로드웨이 비뮤지컬 부문 판매수익 1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김광보 연출의 국내 초연 작품이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29일까지 공연 중이다.

알코올 중독에서 겨우 벗어난 내성적인 성격의 조이(이명행, 지현준)와 불같은 성격으로 뒷골목 얼치기들의 쌈짓돈을 뜯고 다니는 조이의 파트너 대니(이석준, 문종원)는 형사진급을 꿈꾸는 시카고의 평범한 경찰이었다. 어느 저녁 대니의 거실로 날아든 한 방의 총알이 그들의 모든 일상을 망가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문의 총알에 박살 난 유리창 파편이 대니의 아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법의 테두리와 상식의 울타리 안에서 '복수'할 길이 없는 대니는 결국 가정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악인의 길을 선택한다.

연극 '스테디 레인'은 두 남자가 치고 받는 대사(가끔은 주먹도 오간다)만으로 온전히 극의 내러티브를 감당하는 2인극이다. 별다른 무대장치도 특별한 의상도 없다. 경찰서 취조실을 닮은 공간에 철제 책걸상이 몇 개 놓인 게 전부다. 경찰의 활극, 머리 위를 스쳐 가는 총알, 범죄자를 쫓는 자동차 추격장면 등 모든 상황이 오직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액션과 말로 구현된다. 관객은 90분 동안 누아르 영화 한 편을 본 듯 박진감을 느끼지만 정작 무대에서 이뤄지는 물리적인 움직임은 희박하다. 1초도 멈추지 않는 두 배우의 대사가 이 연극의 지문이며 무대장치의 전부인 셈이다.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구도이지만 두 배우의 이야기 속에는 인종간 갈등,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 그리고 치를 떨게 하는 사이코패스의 등장 등이 다양하게 담겨 있어 활극처럼 각인된다. 미국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제프리 다머의 실화를 차용하고 간단한 핀(pin) 조명만으로 두 배우의 심리상태를 날카롭게 비추는 등 연극이 얼마나 누아르를 실감나게 무대에 표현할 수 있는지 정석을 보여준다.

종말은 철저히 비극이다. 결국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주저앉는 인간 군상의 표상이다. 존재를 파악하기도 전에 축축하게 뼛속까지 젖어오는 가랑비 같은 음습한 원작이 단출한 연출에 능한 김광보와 만나 빛을 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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