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군에 입대하던 날이었다. 춘천 모 부대에 머리 빡빡 깎은 동생을 들여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방문을 닫아 걸고 누워 계셨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들 군대 보내는 것도 두번째인데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처음이 힘들지 두번째부터는 일도 아니다"며 웃는 얼굴로 씩씩하게 아들을 배웅하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 날 이후 거의 일주일간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지냈다. 어머니 머리맡에는 동생이 쓰던 물건이 놓여있었고, 얼마간은 음식도 제대로 못 드셨다. 웃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랬다.
요즘 '어머니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찾아가 만났다. 하필 철도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 4명이 구속된 날이었다. "정치 좀 하고 싶은데, 돌봐달라는 그런 얘기"를 했단다.
한달 전 파업이 한창일 때 "사랑하는 직원들을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 할 수 밖에 없었다"던 최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식들이 감방에 들어간 날 어머니는 2년도 더 남은 총선을 위해 '지역구 챙기기' 청탁을 한 셈이다.
논란이 되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이라면서 최소한의 표정 관리조차 못하는 최 사장이 한심했다. 사랑, 회초리, 어머니, 찢어지는 마음…. 그런 단어들을 곱씹을 때마다 쓴 웃음이 나온다. 파업 과정에서 아무리 노조와 감정의 골이 깊어졌어도, 노조 간부들이 줄줄이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시간 여당 대표에게 쪼르륵 달려가 청탁하는 건 같은 조직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람의 도리는 아닌 것 같다. 하물며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나를 도왔던 새누리당 분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그 분들을 배려해 줄 것을 부탁했다"니 어머니의 마음은 '새누리당 분들'에게만 향한 모양이다.
'어머니의 회초리'에 직위해제된 철도 노조원들을 보면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젊은이들의 고백이 들끓고 있는 마당에 정작 회초리 든 어머니는 개인의 안녕, 정치적 안녕만 좇고 있으니 자식 키우는 전국의 진짜 어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그는 코레일 사장 취임 전부터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두고 논란이 된 인물이었다. 사장 1차 공모에서 최종후보 3인에 들지 못했음에도 2차 재공모에서 사장이 됐다. 코레일 부사장을 지낸 경력이 있지만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운 인연이 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19대 총선 때는 대전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했고, 그 전에는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는 정치권의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철도 파업이 끝나고 조직을 추슬러야 할 시기에 그가 했던 행동을 보면 철도 전문가와 정치인 중 어느 쪽에 그의 정체성이 있는지 분명해진다.
수많은 공기업이 그렇듯 코레일과 낙하산의 인연은 뿌리깊다. 초대 신광순 사장이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사건 때문에 사퇴하자 16대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철 사장이 취임했다. 3선 의원 출신의 철도 문외한이었던 그는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보은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대그룹 출신으로 이명박 서울시장 밑에서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을 지냈던 강경호 사장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돼 6개월도 못 채우고 물러났고, 뒤를 이은 허준영 사장은 경찰청장 출신이다. 그 역시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했다.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정창영 사장도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등의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낙하산 사장들의 면면을 보면 역대 정부의 공기업 개혁 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집권자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CEO가 공기업에 필요하다면 낙하산 수준이라도 높였으면 한다. 사회에선 조롱거리지만 정작 군에서는 고도로 훈련받은 최정예 병사가 아니면 낙하산을 탈 수 없다. 낙하산을 놀이기구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인들 말고, 진짜 전쟁터에 투입될 낙하산에 걸맞은 인물이 아니면 공기업 개혁은 요원하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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