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상호 비방과 적대적 행위를 멈추자는 북한의 '중대 제안'을 직접 일축했다. 저의가 따로 있는 '위장평화 공세'일 뿐이라는 시각에서다. 우리 정부의 이례적인 신속 거부 탓에 체면을 구긴 북측이 당초 공언대로 먼저 모범을 보일지 아니면 태도를 바꿀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인도에서 3박4일간의 국빈 방문을 마친 뒤 스위스로 떠나기 전, 국방부 등 외교ㆍ안보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북한이 선전 공세를 할 때일수록 대남 도발에 더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전날 통일부를 통해 우리 정부가 이미 거부한 제안을 작심한 듯 다시 물리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이번 제의가 늘 반복된 북한의 기만 전술인 만큼 속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도 19일 "북한이 '위장 평화' 공세를 편 뒤 대남 도발을 자행해온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1992년 북한의 유사 제의에 당시 노태우 정부는 한미 양국의 '팀 스피릿' 훈련까지 유보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8, 19일에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까지 나서 먼저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리 정부가 무게를 두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은 뒤 몇몇 의미 없는 조치를 취해 관계 경색을 유도하고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라고 일축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북한이 공언한 긴장 완화를 위한 후속 조치의 구체적 내용과 이후 예상되는 도발 행태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외교ㆍ안보 당국은 '실천적 행동'과 관련, 북한이 ▦대남 비방 전단지 살포 및 비난 방송 중단 ▦동계 훈련 일시 자제 및 전방 배치 장비 후방 후퇴 ▦남북회담 제안 등의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국은 또 이런 조치가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핵탄두를 소형ㆍ경량화하지 못한 북한으로서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을 더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는 "보다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을 다루려면 국제사회에서의 명분이 중요한데, 정부가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4월 말까지 잠수함 공격,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사이버 테러 등 행위 주체 파악이 힘든 도발을 가한 뒤 5, 6월에는 장거리 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