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 35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간은 평창과 지낸 지난 5년입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하도봉(60ㆍ사진) 사무총장이 내달 초 정년 퇴임한다. 1979년 7월 박정희 정권 말기에 청와대 의전파트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퇴임을 앞두고 19일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7급으로 공직에 입문해 직업공무원의 최고봉인 차관보(1급)로 퇴임하는 그는 후배 공무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하순봉 전 국회의원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는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 전부터 간접적으로 일을 해왔지만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2010년"이라며 '평창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한승수 국무총리 총무비서관으로 근무할 때였다는 그는 민간인 사찰로 홍역을 치른 '공직자 윤리 지원관실'로 발령 받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한총리에게 "평창올림픽을 유치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 피력해 2010년 평창 유치위 사무총장으로 발령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평창 유치위는 내부 갈등과 반목으로 분위기가 '바닥'에 가까웠다는 것이 체육계의 정설이다. 위원회 구성원이 모두 정부와 강원도 공무원, 기업인 출신으로 구심점이 없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 총장은 "6개월에 걸쳐 한 사람씩 면담을 하면서 설득했다.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역적이 된다. 죽을 각오로 일해보자'며 조직을 추스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공직 생활의 하이라이트로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를 꼽았다. 그는 IOC위원들의 동계올림픽 개최 확정 투표일 이틀을 앞두고 역풍을 각오하고 평창의 유치 확신이 들어 이를 언론에 전격 공표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평창은 전체 95명의 IOC위원 중 63명의 마음을 얻었다. 역대 동계올림픽 유치 최다득표였다.
하 총장은 공직자의 롤 모델로 한승수 총리를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는 "한총리로부터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행정감각과 정무적인 판단, 그리고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야 등을 깊이 있게 배웠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는 "관료적인 마인드만으론 절대(유치에) 성공할 수 없었다"며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유치위원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조 위원장이 '돈은 신경 쓰지 마라. 당신은 IOC위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만 신경 써라'며 힘을 실어줬다"고 설명했다.
퇴임 후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백령도까지 한반도를 U자로 일주하고 싶다는 그는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태극 전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하 총장은"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면 소치에서 근사한 저녁을 사주기로 약속했다"며 "귀국하면 서울에서 금메달 파티를 열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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