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효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앞서 출간한 과 에서 섬세한 언어를 선보였던 시인이 예순여섯 편의 시를 통해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마주쳐야 하는 고통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시인이 목격하는 현실은 부조리와 불합리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희망버스를 보고 피맛골의 재개발 현장과 서쪽 바다의 거대한 물기둥을 보는 시인의 눈은 불안하다. 시인은 짙은 무기력을 체험할 뿐이다. 시인의 고뇌와 아픔은 시집에 수록된 '도심의 저녁 식사'에서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하오 일곱 시 반,/ 아직 어둠이 오지 않은 여름 저녁/ 텅 빈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청진동은 오랫동안 재개발 중이고/ 창 너머 젖은 하늘 아득한 곳의 타워크레인을 본다…홀로 마주한 밥상의 서걱거리는 밥알들/ 씹다 만 깍두기처럼 겉도는 말들/ 떠도는 말들과 부유하는 진실을 삼키는/ 여름날, 목메는 도심의 저녁 식사'
대결해야 할 상대는 타워크레인처럼 위압적인데 시인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나약한 존재다. 시인은 이렇게 약하지만 목이 메어 밥알조차 삼키지 못한다. "남들보다 빨리 움츠러들고, 남들보다 소심하게 반응하지만 대신 먼저 아프고 오래 앓고 마지막까지 질문한다"는 그의 고백 그대로다.
이렇게 아픈 현실을 시인이 버텨 낼 수 있는 것은 미래를 낙관하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시인이 자주 호출하는 북방에 새겨져 있다. 북방이 특정 공간이나 특정 방향은 아니다. 평론가 김수이는 "곽효환 시의 북방은 차단된 삶의 여로이고 단절된 역사의 현장이며 잊혀가는 정감의 고향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의 진원지다. 글쓰기의 스승인 백석과 이용악이 존재하는 시의 고향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쓴다. '가지가 꺾이고 몸통이 휘고 부러지고 / 끝내는 쓰러진 / 상처투성이의 북방 침엽수림에서 나를 본다 / 혹독한 겨울의 잔해를 떠안은 설해목들 / 숲은 서늘한 사랑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숲에 드니 숲의 상처가 보인다')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는 거친 북방이지만 마침내 숲이 되고 고통을 안아주는 북방을 그는 꿈꾸고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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