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는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패션은 '위협적'이다. 욕설이 입에 붙어있고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전형적인 양아치의 면모다. 지난해 황정민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긴 '신세계'의 깡패두목 정청을 연상케 할만하다.
그러나 22일 개봉하는'남자가 사랑할 때'(감독 한동욱)의 건달 태일은 정청과 닮은 듯 다르다. 정청처럼 조직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야망은 애초에 없었다. 고향에 머물며 그저 생계를 위해 사채업체 부장으로서 폭력을 휘두른다. 휘발유를 들이키며 채무자를 위협하나 속정은 깊다. 채무자에게 아이 학원비를 떼주는 등 어려움 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준다. "헤이, 브라더"라 말하며 깊은 속내를 위악하게 드러냈던 정청보다 더 순박하다. 그런 사내가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투박한 순정을 받친다면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남자가 사랑할 때'의 태일은 황정민의 무구한 눈망울을 통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내심 정청처럼 보이면 어쩌지'라는 작은 불안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사랑 이야기라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오묘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인생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공포영화 등과 달리 멜로영화는 관객들이 다 한번쯤 경험하는 이야기를 그리니 연기할 때도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태일의 우직한 사랑은 수협 직원 호정(한혜진)에게 향한다. 채무자의 딸인데 태일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빚까지 떠안는다. 결국 호정만 바라보는 태일의 사랑은 서글픈 결말로 치닫는다. 태일의 마음을 순식간에 뺏는 여인인데도 황정민은 "안 예쁜 여자배우가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소도시 분위기에서 너무 (미모가) 두드러지면 생경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한혜진은 너무 예뻐 처음엔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만나보니 TV에서 본 인상과 달리 수더분하고 털털해서 안심을 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태일처럼 비주류 인생들을 주로 표현해왔다. 그들에 대한 연민이 있냐 물으니 "저 자체가 주변부 인생"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요즘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서 그렇지 정서적으로는 언제나 주변인"이라고도 말했다. "루저가 재미있고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도 했다. "의도치 않았다"지만 그가 경찰이나 건달을 가장 많이 소화해낸 이유인 듯했다.
황정민은 '남자가 사랑할 때'가 "가족과 아버지 이야기도 다루고 있어 좋았다"고 했다. "한 남자가 여자와 가족과 아버지를 사랑할 때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고도 말했다. 그의 다음 출연작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은 좀 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다. 한 평범한 사내를 렌즈 삼아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이 영화는 한국의 아버지들이 걸어온 길이 스크린을 관통한다. 황정민은 "윤 감독님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한마디만 듣고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은 채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국제시장' 이후엔 또 형사 역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재벌2세와 형사의 대결을 그린 '베테랑'(감독 류승완)이 3월 촬영에 들어간다. 그의 역할은 당연하게도 베테랑 형사. 그는 "(이전 출연작들과 달리) 가볍고 재미있는 형사물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황정민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배우와 함께 해서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