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으로 상징되는 강자들… 당연해 보이는 승자의 조건이 패배 부르는 약점 될 수도 있어9명의 '다윗' 사례 소개… 농구 '올코트 프레스' 전법 등이 기존의 승리 법칙을 뒤엎어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장면으로 꼽힌다. 청동 투구와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210㎝ 장신의 골리앗을 돌팔매로 간단히 무찌른 소년 다윗의 이야기는 '약자의 우연한 승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약자' 다윗은 오히려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높았다는 점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골리앗은 덩치가 큰 반면 시력이 약했고(다윗의 막대기를 '막대기들'로 표현한 점) 거동이 불편(궁사가 아님에도 하인을 대동)할 정도로 심한 질병을 앓고 있었음이 성경에 나타난다. 반대로 조그마한 몸집의 다윗은 양치기로 전해지지만 사실 돌을 초속 34m로 던져 적군을 살상할 정도로 훈련된 전문 투석병이라는 해석도 있다. 단순히 덩치 비교만 한다면 골리앗이 억울하게 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본다면 다윗의 승리는 당연했다. 강력하고 힘센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와 같지는 않다.
국내 독자들에게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당연해 보이는 승자의 조건들이 사실은 패배의 약점일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약점의 유리함'을 강설한다. 골리앗으로 상징되는 강자들의 눈에 보이는 강점이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힘의 우위, 규모가 작아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매번 옳은 것은 아니다. 강자가 승리를 독식한다는 믿음은 맹신이며 금언일 수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난독증에 걸려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던 소년이 청력을 발달시켜 미국 정부를 대변해 MS 반독점 소송을 담당한 유명 변호사가 된 이야기 등 이른바 '거인 골리앗'을 이겨낸 이 시대 아홉 명의 다윗을 소개한다. 패스와 드리블, 슛 능력에 있어 완전히 '빵점'인 농구 선수들이 상식을 벗어난 '올코트 프레스' 전법을 통해 기존의 승리 법칙을 전복시킨 사례 등 달걀로 바위를 깨트린 이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시련을 장점으로 활용한 이른바 '바람직한 역경'으로 일군 성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땅의 '언더독(패배자)'에게 "참고 견뎌라"는 식의 수동적인 '힐링'을 앞세우지 않고 숨겨진 장점과 강함을 찾아내라 조언하는 방식이다.
글래드웰은 더불어 '당연함'이라는 믿음이 이끄는 세상의 법칙들, 예를 들어 '돈이 많을수록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습환경이 좋다' 등이 종종 옳지 않다고 설명한다.
미국 코네티컷주 레이크빌에는 세계적인 사립 기숙학교 호치키스가 있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5만달러에 달한다. 골프 코스, 하키 링크는 물론 최고가 브랜드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무려 12대나 구비돼 있다. 이 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은 12명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세계의 골리앗이라 불릴만한 학부모들이 몰려드는 학교인데 그렇다고 해서 학습환경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수 12명을 유지하는 이 학교의 환경은 자랑할 게 못 된다. 글래드웰은 "학생 12명은 휴일 저녁식사 테이블에 모여 앉아도 될 만큼 적은 수이고 이렇게 되면 자율성을 잃을 정도로 교우관계가 밀접해진다"며 "만일 더 적은 수의 학급이라면 학생들은 숨을 곳이 없어지고 다양성도 부족해진다"고 말한다.
책은 또 무조건 더 좋은 대학에 가야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존의 '당연함'에 반기를 든다. 좋은 대학이라는 큰 연못으로 뛰어든 똑똑한 학생은 실력을 향상시키기는커녕 자신보다 큰 물고기들에 기가 죽어 가진 실력마저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개인이든 사회든 너무 부유하고 강하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글래드웰의 이야기는 과도한 자원 투입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며 "이 책은 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오도돼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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