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는 모순적인 요구 조건이 있었다. 멀리서는 잘 보여도 가까이서는 가려주어라. 건물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당고개 무당 같은 윗도리에 장례식장 사회자 같은 아랫도리의 조합이 국도변 러브호텔의 전형이었다…러브호텔은 건물주의 재산권, 이용자의 행복추구권이 인근 주민들의 주거생활권, 그 아이들의 교육환경권과 진을 대치한 협곡이다.'(62~65쪽)
대한민국 사회는 무던히도 뒤틀려 있어서 상식을 갖고 그걸 바라보려는 시도가 되레 뒤틀려 보이기 마련이다. 에필로그에 지은이가 쓴 표현이 그런 뜻일 게다. "이 사회는 덜 이성적이 되기에는 이미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보편'을 얘기하면 '특수'를 바르집는 모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걸 무릅쓰고 상식을 지닌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사는 공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책이 다.
프로필에 주요 작품으로 김천상공회의소, 해심헌, 효형출판 사옥 등이 소개돼 있다. 그러니 지은이는 현역 건축가다. 건축을 연구하는 학자고, 가르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간 그가 펴낸 몇 권의 책은 인문학자의 그것에 가까운 언어로 채워져 있다. 건축이라는 행위의 각 단계, 또한 그 앞뒤의 단계를 포괄하는 총체적 작업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책은 그 인간-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공동 점유한-의 사회적 면모가 어떻게 건축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지를 짚고 있다.
책은, 당연하게도 아파트에 대한 얘기로 시작된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공간이니 '건축사회학'의 당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아파트의 구조에서 씨족공동체의 해체를 읽어낸다. 무심코 쓰는 엘리베이터와 공유면적의 설계에는 낯선 이웃과 계속 낯설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가 숨어 있다. 반대로 예식장과 장례식장은 흩어진 공동체의 재결합을 위해 설계된 도시의 씨족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의 병영 모습을 여전히 재현하고 있는 학교의 구조, "관광객의 사진기 파인더에는 열려 있되 시민들에게는 닫혀"있는 광장, 내면의 양심을 밖으로 까발려서 일률화할 것을 요구하는 저 '바르게 살자'는 관변단체의 바윗덩어리, "국민은 이런 뒷문으로 다녀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써놓은" 국회의사당이 이 건축가의 벼린 날 같은 시선에 분해돼 그 저변의 무의식까지 사회학의 도면 위에 쏟아놓는다. 책 제목의 빨강은, 아마 그렇게 분해된 도시의 내장이 띠고 있는 비릿한 색깔일 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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