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이 주요 현안마다 금융당국에 반기를 들고 있다. 금융당국 앞에서 움츠리던 과거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 금융당국의 리더십 부재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다. 금융당국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자율권을 줬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시장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를 앞세우다 보니 스스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의 추가 지원 중단으로 작년 말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건설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쌍용건설 직원들은 김석준 회장의 법정관리인 선임에 반대하며 서울 신천동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고, 1,400여 협력업체들은 자금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쌍용건설에 보증을 선 건설공제조합과 대한주택보증도 발주처에 물어줘야 할 비용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채권단의 반대에도 금융당국이 경제적 파장만을 고려해 지난해 2월 워크아웃을 몰아 부치면서 오히려 부실만 더욱 키운 꼴이 됐다"며 "이번 기회라도 제대로 정리하자는 차원에서 금융당국의 만류에도 지원 중단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권 반발에 손을 들었다. 금융당국은 한진해운이 4억 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도록 지급 보증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유도했으나 채권단 중 하나인 농협은행이 반대해 실패했다. 농협은 한진해운 보유 선박의 경쟁력이 높지 않아 추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끝까지 반대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둘러싸고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은행 매각을 놓고 금융위원회는 "산업자본이 지방은행을 가져가면 은행발전에 저해가 된다"며 사실상 경남ㆍ울산지역 상공인들과 사모펀드 MBK가 모인 '경은사랑컨소시엄'을 반대했다. 결국 BS금융이 높은 인수가를 제시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택됐지만, 지역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은행 매각시 우리금융 측이 물어야 할 세금을 면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경남지역 국회의원들까지 합세해 막고 있다. 우리금융은 이사회는 지방은행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인세 등 6,500억원을 감면해주지 않으면 매각을 철회한다고 선언했지만 금융당국은 "민영화를 늦출 수 없다"며 법인세를 내더라도 무조건 매각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맞서는 중이다.
결국 금융사들이 굴복하긴 했지만 경영진 연봉 삭감을 둘러싸고도 반발이 거셌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해당 금융사의 경영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회사 내 이사회 등을 통해 조정할 사안이지 금융당국이 여론몰이를 하며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금융당국이 부실기업 채권단의 팔을 비틀어 우격다짐 식으로 지원을 해왔으나, 최근 금융사들은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의 입장을 대변하진 않는 추세"라며 "금융당국은 앞으로는 특정한 정책목표를 우선시해야 할 경우에는 재량권 남용보다는 법률로 명기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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