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북극에서 내려온 동장군(冬將軍)보다 더 냉랭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꺼냈지만 돌아온 북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앞에선 웃는 얼굴로 손길을 내밀면서 뒤로는 '급변사태'(흡수통일)를 꿈꾸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평가절하했다. 갑오년 새해를 맞아 남북 최고지도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민 손길이 상대에 의해 외면당한 셈이다. 그러는 사이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김 위원장의 친구라며 평양을 수 차례 방문해 세계 언론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CNN에서 로드먼을 '멍청이'라고 일갈했다. "야만적이고 무모한 애송이(김정은)의 선전 도구에 이용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구설 속에서도 로드먼의 방북 노이즈 마케팅은 성공한 듯 보인다.
북한은 로드먼에 이어 한국 팬 들에게도 친숙한 일본 프로레슬러 출신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을 지난 13일 초청, 일본과 스포츠 교류를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북간에는 공식, 비공식 대화채널 가동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불통과 침묵만이 오갈 뿐이다. 원인으로는 북한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총격,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한 우리 정부의 5ㆍ24 조치를 꼽을 수 있다. 일체의 남북교역과 대북지원을 중단한 5ㆍ24 조치에 따라 남북관계는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북한은 당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연주하게 하는 등 화해의 메시지를 내비친 바 있다. 김 위원장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우리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체육 분야에서 만큼은 해빙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자못 기대가 컸던 남북 체육교류는 역도 선수권이'단발마 대회'로 끝나면서 더 이상 탄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일찍이 소프트파워(연성권력ㆍ軟性權力)를 역설했다. 그는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경성권력ㆍ硬性權力)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문화, 예술로 상징되는 소프트파워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스포츠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유ㆍ무형의 강제력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 매력을 통해 설득하고 이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연말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부음기사를 2007년부터 준비해왔다고 보도했다.(12월 5일자) 담당 기자는 만델라 생전, 그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을 27년 동안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어떻게 다스렸습니까." 만델라의 답변은 이랬다.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지도자는 미워하는 데 마음을 쓸 수가 없습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고 했다. 그러나 속뜻은 '대박 나게 하는 통일로 만들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는 대박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통일 대박'의 첫 걸음은 무엇보다 소프트파워 가동이다. 증오 대신 우리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서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마침 올해는 스포츠의 해다.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007년 창춘(長春) 동계아시아 경기대회 이후 명맥이 끊긴 남북 공동입장부터 추진해보자. 여의도 일각에서 추진하는 남북 국회회담보다 정부가 먼저 체육회담을 제의하면 어떨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합동훈련도 안건이 될 수 있다. 북측도 "좋은 계절에 마주 앉자"라고 여지를 남겼다. '좋은 계절'은 마음속에서 나온다.
최형철 스포츠부 차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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