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수도권 주택가격 하락세는 여전하고 전월세난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양상은 일시적 현상이기보다 잠재경제성장률 둔화, 인구 가구구조 변화, 소비자 요구의 변화 등에 따른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이 2~3%대로 낮아지고 고용여건이 악화되면서 수요자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고 저출산ㆍ고령화와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수요기반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는 이제 끝난 셈이다.
부동산시장의 변화는 수요자들의 인식마저 바꾸고 있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고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수요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적 수요가 지배적이었다면 지금은 거주ㆍ임대목적의 실수요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주거비 부담이 적은 중소형주택이 인기를 끌면서 주택가격의 '대형 약세, 소형 강세' 현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월세 등 임대목적의 투자수요가 증가하면서 주택임대차시장도 전세에서 월세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최근의 전월세난도 수요자는 주택구입을 기피하고, 집주인은 월세를 선호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장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개발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같이 공급이 수요를 유인하지 못하고, 수요자의 요구가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개발정책 기조가 변화해야 한다. 과거 투기시대에 가격안정이 주된 정책목표였다면, 이제는 무주택서민의 주거안정 등 주거복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공공임대주택재고의 확충, 주택바우처 시행 등 저소득층 주거안정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 과거 투기억제 등을 위해 도입했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나 입주자를 선별했던 청약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둘째, 그동안 도시 외곽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통한 주택의 대량공급체계도 지양되어야 한다. 몇천 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주택 공급을 받쳐 줄 수요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의 대규모 주택공급은 결국 인근 지역의 수요 유출로 이어져 지역 불균형과 미분양만 양산할 것이다. 최근 경기 서북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규모 미분양사태는 바로 대량공급체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무조건적 주택공급이 아니라 수요변화를 고려한 공급 관리가 중요한 시대이다. 택지개발방식도 신도시 급의 대규모가 아닌 중ㆍ소규모로 축소하고, 사업단계도 일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신규개발보다는 기성 시가지 활성화를 위한 도시재생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인구증가가 한계에 직면하면서 더 이상 도시의 외연 확산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기성시가지는 주택노후화와 도심공동화로 인해 재생필요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 시가지 개발방식도 개발업자가 주도하는 재건축ㆍ재개발 방식에서 주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개발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개발이익에 기대는 과거 방식으로는 사업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재생 사업도 주민의견 수렴, 투자자 유치 등을 통해 장기에 걸쳐 추진될 수밖에 없어 이와 관련한 제도정비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넷째, 주택공급방식에서는 아파트 위주의 대량생산체계에서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와 같은 다품종 소량생산체계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소득이 증대하고 건강ㆍ환경ㆍ안전ㆍ에너지에 대해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거와 업무ㆍ상업시설의 결합은 물론 문화적 요소와 디자인을 강조한 새로운 개념의 제품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개발이익에 의존하는 공익사업방식도 변화될 필요가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해 더 이상 교차보조를 통한 기반시설 및 임대주택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주체의 재무구조만 악화시키고 정책목표 달성을 어렵게 할 것이다. 따라서 공공개발사업도 재정지원 현실화, 민간참여 확대, 기금 출자전환 등 사업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인근 토지주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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