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개그 유행어를 빼고 나면 '소통'보다 흔한 말이 드물다. 신문과 방송 보도는 물론이고 일상대화나 기업내부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소통'이 강조된다. 그런데도 권력과 국민의 소통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소통이 뭐길래 이리 어려울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통은 '①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②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가리킨다. ①은 대화 통로가 막히지 않은 대화 자체를, ②는 의사 일치에 이른 대화의 긍정적 결과까지를 포함한다. 이런 구분은 언어학자들이 다양하게 밝혀온 라포르(Rapport)ㆍ리포트(Report)의 차이와 닮았다.
데보라 태넌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대화방식 차이를 '관계적 말하기(Rapport talk)'와 '보고적 말하기(Report talk)'로 나누었다. 관계적 말하기는 상호작용과 교감, 관계 확인에 치중하는 반면 보고적 말하기는 정보와 메시지의 전달이 중심이다. 물론 남자라고 관계적 말하기를 완전 외면하거나 여자라고 보고적 말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상적 대화에 임하는 남녀의 감각 차이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이런 차이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남편들이 많다. 남편은 아내가 장황한 얘기로 전하고자 하는 사실과 정보에 관심을 둔다.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 갔다거나 성적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등의 사실과 전후 사정이 궁금하다. 그러나 아내는 사실의 전달보다는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괴로움이나 환희에 대한 남편의 정서적 공감을 얻고자 한다. 맞장구를 치거나 같이 화내고 웃으며 적극적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남편이 '낯선 남자'로 느껴지는 것은 약과이고, "그러니까 핵심이 뭐야"하고 되묻는 남편은 아예 원수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차이는 언사가 직설적인지 은유적인지, 대화가 수단인지 목적인지, 다른 사람에게 말 순서를 넘기는지 중간에 여기저기서 끼어들어 겹치기로 말하는지 등의 다양한 측면으로 나타난다. 대화가 정보 전달의 수단에 불과한 보고적 말하기와 달리 대화 자체가 목적이고 그를 통해 상대와의 관계를 확인해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는 관계적 말하기는 끼어들기나 겹쳐 말하기에 관대하다. 남성끼리의 대화에서 "장동건이 최고"라는 말에 "아니야, 이병헌이야"라는 말이 끼어들면 서로 얼굴까지 붉히는 논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끼리의 대화에서는 일단 '인기 연예인' 영역에 일치하고 나면 서로 의견이 달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분위기와 동류 의식의 확인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라포르ㆍ리포트 요소가 병행된 소통이 이상적이다. 상사가 종일 사무적 지시만 반복해서야 소통은 아득하다. 그렇다고 아무 내용 없이 밥이나 같이 먹으며 '잘해 보자!'만 외쳐서도 안 된다. 둘을 병행하기 어렵다면 우선 라포르적 소통에라도 나서는 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다. 리포트적 소통으로 아무리 정확한 지시를 내려도 정서적 공감 없이 순도 높은 실행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국민의 소통 요구는 라포르적 소통, 사전적 의미로는 ①의 소통이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를 근거로 한 야당이나 비판자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주장을 수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 즉 ②의 소통을 권력에 바란다. 그런데 ②의 소통 능력에 대해서는 선거로써 국민의 선택이 끝났다. 뒤늦게 그런 '소통'을 외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도외시한 결과다.
더욱 큰 문제는 야당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도 소통이라면 으레 ②의 소통이나 리포트적 소통에만 매달리는 경향이다. "아무런 결과 없이 그저 만나서 밥 먹고 악수하는 회담은 소용없다"는 말을 양쪽이 청와대 회동이나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며 똑같이 했다. 이래서야 숱한 소통의 외침이 헛될 수밖에 없다. 소통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지 못하는 한 소통하라는 주장마저 국민 가슴에 닿지 않는 진짜 불통의 시대가 올지 모른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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