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서울 영등포구 A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은 김모(31)씨는 출산 일주일 만에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A산부인과와 연계된 아기전문 사진관 운영자라고 밝힌 여성은 "딸이 갓 태어났을 때 사진을 찍었는데 생후 50, 100일 기념사진을 계약하면 신생아 사진은 공짜로 주겠다"며 100만원 넘는 패키지 촬영을 권했다. 김씨가 "부모 허락도 없이 왜 아기 사진을 찍었느냐"고 항의하자 여성은 "서비스 차원이었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탄생 순간부터 돌잔치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성장 앨범'이 최근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관련 업계의 상술이 도를 넘고 있다. 업체들은 부모에게 묻지도 않고 찍은 신생아 사진을 미끼로 고가의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산부인과도 출산 관련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사진사의 신생아실 출입을 허용하며 분위기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술에 혹한 산모들이 충동적으로 패키지 상품을 계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생후 50일, 100일, 돌 사진까지 담는 패키지 비용은 사진 매수와 앨범 종류에 따라 4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에 달한다. 패키지 계약을 해도 앨범에 들어가는 신생아 사진은 한두 장에 불과하고 무료 제공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원본은 받지 못한다. 김씨는 "멋대로 찍은 아기 사진을 상행위에 이용하는 건 초상권 침해가 아니냐"며 "더구나 원본은 주지 않아 혹시 내 아이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비의료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야 할 신생아실에 사진사가 드나들며 사진을 찍는 것도 산모들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서울 강남의 산부인과에서 출산한 차모(28)씨는 "배 아파 낳은 엄마도 신생아실에 못 들어가고 창 밖에서 아기를 봐야 하는데 외부인이 마음대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산부인과 신생아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기의 부모도 출입할 수 없다. 갓난아기들은 면역력이 약해 병원균 등의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영호 한양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문지식을 갖춘 의료인 외에 일반인이 신생아실에 출입하는 것은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산모들이 딱히 호소할 방법은 없다. 신생아실에 외부인이 출입하는 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생아실 출입은 가운을 입거나 손에 알코올 소독제를 뿌리는 등 병원 자체 기준에 따른다"면서 "외부인이 출입했다고 행정적 제재를 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업체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산부인과와 연계된 사진업체 관계자는 "부모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과 협의한 것"이라며 "신생아실에는 충분히 위생 조치를 하고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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