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신입사원 채용시험을 바꾼 건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삼성고시 신드롬'때문이었다. 별도의 서류전형이 없어 인터넷을 통해 응시원서만 접수하면 사실상 누구나 '꿈의 직장'인 삼성그룹 입사관문에 노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몰렸다.
상하반기 두 차례 실시되는 필기시험, 즉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도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무려 20만명. 여기엔 '허수'도 있지만, 어쨌든 삼성은 시험장을 구하지 못해 진땀을 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SSAT 시험을 위해 참고서를 사고, 몇 십만 원짜리 과외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20만명이 100만원씩만 쓴다 해도 사회적으로 들어가는 '삼성고시비용'은 무려 2,000억에 달한다. 대학가에선 "삼성이든 어디든 1년 취업준비에만 1,000만원이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삼성은 이 같은 문제해소를 위해 결국 서류전형 부활카드를 뽑았다. '명문대 출신 걸러내기'수단이란 비판을 받아온 서류전형은 삼성에서 '열린 채용'을 표방하며 1995년 가장 먼저 폐지됐던 제도. 하지만 응시인원과 사회적 응시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서류전형 부활이 불가피했다. 응시자들로선 SSAT와 면접에 앞서, 관문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삼성은 서류전형 통과의 핵심은 자기소개서, 즉 에세이라고 강조했다. 박용기 삼성전자 인사팀장(전무)은 "서류전형을 해도 출신학교, 자격증 소지여부, 해외연수경험 등은 보지 않는다"며 "스펙(조건)은 입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기소개서를 통해 지원하려는 회사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평소 얼마나 준비했는지 전문성을 정성 평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자기소개서 작성요령도 제시했다. 박 팀장은 "이공계의 경우 전공과목을 얼마나 많이 듣고 열심히 했는지, 마케팅 지원자라면 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경진대회 참여여부, 관련 과목 수강 여부 등을 자기소개서에 충분히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지원자라면 프로그램개발 등 해당 분야에 맞는 경험을 집중적으로 쌓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되지 않은 산만한 나열은 오히려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서류전형만으로 판단이 힘들면 사전 인터뷰도 실시할 방침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총ㆍ학장 추천제다. 대학 총ㆍ학장의 추천을 받으면 서류전형 없이 필기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전국 200개 대학이 대상이지만, 모든 대학에 똑같은 추천장을 주는 것은 아니며 올해는 해당학교 출신들이 삼성에 얼마나 합격 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배정할 계획이다. 이후 총ㆍ학장 추천으로 들어온 입사자들의 기여도 등을 보고 조정할 방침이다.
삼성 관계자는 "혹시라도 서류전형 부활 때문에 지방대 출신들이 불이익을 받을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약속했던 지방대 35% 채용방침은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다른 대기업들은 현재도 인ㆍ적성검사 위주의 필기 시험에 앞서 1차 서류전형을 운용하고 있다. 때문에 대기업 입사제도는 서류전형-필기시험-면접으로 이어지는 3단계 시스템이 사실상 굳어지는 셈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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