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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월 16일] 예술도 잣대가 있나

입력
2014.01.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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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걔는 좀 이상해." 다른 연주자들을 평가하면서 던지는 말이다. 문제는 그저 그런 연주자를 향해 던진 말이 아니라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인정받고 있는 이들에게도 주저 없이 날 선 비판을 쏟아 낸다는 거다.

"XX는 너무 쇼맨십만 강하고 음악이 없는 것 같아", "XXXX는 테크닉만 있지 음악 해석력이 떨어져." 어떤 이는 과장이 심하고 어떤 연주자는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고, 또 누구는 외모가 맘에 안 들고, 심지어 연주복 스타일까지 비판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인정받는 연주자들은 꽤 험난한 과정을 밟고 올라온 이들이다. 매년 국제 콩쿠르 입상자 명단만 봐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이 중에서도 끝까지 남은 생존자들이다. 비판은 자유지만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얼마나 하는데."

음악인들이 말하는 것 중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제도권 음악'이다. 좋게 말하면 '아카데미즘'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그들만의 잔치다. 자기들이 경험했고 공부한 것을 끼리끼리 모여서 향유한다. 그곳에는 관중도 없고 평가도 없다. 자기들끼리 축하하고 스스로 만족해한다. 음악이 언제부터 학문이 되었고, 연구 과제가 되었나. 청중과 같이 향유하지 못하는 음악이 왜 고급음악이라고 착각들을 하는가.

"베토벤은 베토벤답게 연주해야 돼." 평생 베토벤을 연구한 연로한 노 음악인이 말한 것이 아니다. 30대에 막 들어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잘나가는 연주자가 한 말이다. 베토벤다운 것이 뭔지 과연 베토벤 자신은 알지 모르겠다. 세계적인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베토벤의 전통적인 해석은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베토벤의 음악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고, 그것을 연주자와 청중과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다.

요즘 예술 단체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포럼, 세미나다. 예술 정책을 의논하려고 모이고 토론하는 것이면 이해가 가는데 엉뚱하게 창작 작품의 방향성과 작업 프로세싱을 이야기한다. 창작 작품이 공산품인 줄 아는 모양이다. 예술을 집단으로 고민하면 답이 나오나? 만일 그렇게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면 이전의 작곡가들은 이제껏 헛수고한 거다. 비슷한 것으로 옛 소련과 북한의 집체예술이란 것이 있다. 한 작품을 여러 예술가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거다. 결과야 지금까지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모든 일련의 사태들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잣대를 남에게 적용하면서 생긴다. 자신의 잣대와 일치하면 좋은 것이고, 다르면 이상한 것이 된다. 혼자서는 용기가 없으니 단체나 그룹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잣대를 공유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정상'과 다르면 다 '비정상'이 되고 '비상식'이 되어 버린다.

고음악의 대가인 헬무트 릴링은 고음악 연주가 단순히 옛것을 복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을 새롭게 구현함이라고 정의한다. 21세기의 전설로 인정받는 작곡가 펜데레츠키는 전통은 뒤돌아서 문을 여는 것이라고 했다. 전통이 무엇인지 봐야 하지만 눈은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도 예술은 이래야 한다고, 잣대에 맞춰야 한다고 규정짓지 않는다.

예술가는 칼날 같은 예리함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하지만, 근본은 자유로움의 토양에 뿌리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다름과 독특함은 자유로움에서 발아되며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라는 절대 가치가 여기서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순간 족쇄를 찬 울타리 안에서 다른 이들을 칼날같이 바라보게 된다.

두려운 것은 본능적으로 예술가들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혼탁함은 지금 우리사회가 얼마나 이분법적으로, 관료적으로 흐르는지를 투영한다. 재미있는 것은 예술의 마성이다. 힘들고 어두울 때야말로 예술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찾는가 보다.

류재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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