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림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 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란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사건은 고문을 통해 조작된 용공사건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담당 검사는 고문은 없었고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박진우는 실존 인물?
국밥집 아들 박진우는 부림 사건 피해자 가운데 고호석씨와 송병곤씨를 합쳐 놓은 인물이다. 부산대 출신 고교 교사였던 고호석씨는 1981년 당시 야학 교사로 활동하다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고호석씨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김일성에게 지령을 받았지?’ ‘김대중이 배후지?’라는 질문을 받았고, 아니라고 대답하면 몽둥이로 구타를 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산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앞뒀던 송병곤씨는 대공분실에서 ‘너, 평양에 갔다 왔지?’란 질문에 웃다가 살인적인 고문을 당했다. 영화 속에서 아들을 찾아 영도다리 밑까지 찾아 헤맸던 국밥집 주인(김영애)은 송병곤씨 어머니 사연을 참고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송씨 어머니는 4ㆍ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처럼 주검이 바다에서 떠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영도다리 밑을 살피기도 했었다.
고씨는 1988년 복직 소송에서 이겨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고, 송씨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씨와 송씨의 분신격인 박진우 역을 맡은 배우는 임시완은 부산대 공대 출신으로 고씨와 송씨와는 동문이다. 임시완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고(故) 김근태 의원을 다룬 영화 를 보면서 고문을 받는 연기를 연습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진우가 송우석 변호사에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사는 기라꼬, 바위는 부서지가 모래가 되도 계란은 깨나서 그 바위를 넘는다, 이런 얘기는 모릅니까?”는 인구에 회자하는 명대사다.
양심선언한 군의관도 박진우처럼 가상 인물이다.
●부림사건 피해자는 빨갱이?
영화에서 부동림 사건으로 묘사된 부림사건은 ‘부산 학림 사건’의 줄임말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 6월부터 8월까지 전국민주학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를 불법연행하고 고문ㆍ수사한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조작했는데, 전국민주학생연맹 첫 모임이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열렸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숲(林))처럼 무성한 학생운동조직(學)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학림(學林) 사건이라고 불렀다.
부산지방검찰청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 대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불법감금하면서 고문해 용공세력으로 조작했는데, 학림사건과 유사해 부산의 학림사건이란 뜻에서 부림 사건이라고 불렀다. 이상록(선반공), 고호석(교사), 송세경(회사원), 노재열(대학생) 등은 세 차례에 구속됐고, 이듬해 시위하다 잡힌 대학생과 탈영병까지 총 22명이 구속됐다.
옥고를 치르던 이들은 1983년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부산 지역 최대 용공조작사건이란 평가를 받는 부림사건은 200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돼 재심 판결을 받았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2009년 재심을 거쳐 계엄포고령과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판결과 일부 무죄 선고를 받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결과는 2월 13일에 나올 예정이다.
부림사건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피의자였던 이상록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 고호석씨는 이상록씨 담당 검사는 고영주 변호사가 아니라 최병국 검사라면서 과거에도 그런 발언이 있었으나 이상록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특정인을 지목했다며 반박했다.
●송우석과 김상필은 누구?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에게 부동림 사건 변호를 맡아달라고 요청한 김상필(정원중) 변호사는 누굴까?
부산 지역 법조계는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던 고(故) 김광일 변호사라고 지목했다. 김광일 변호사는 부림 사건 당시 부산 지역에서 인권변호사 대부로 손꼽혔고, 노 전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생 시절 김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시보로 일했었다.
성교육 전문가인 구성애씨는 팟캐트 ‘이박사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출연해 부림 사건 피해자인 남편 송세경씨와 김광일 변호사의 인연을 소개했다. 최근 영화 을 본 송세경씨는 “당시 대학생 후배들이 수배 중이었을 때 김광일 변호사가 도와주라며 돈을 줬는데 고문을 받다가 이 사실을 고문을 받다가 털어놓았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면서 울었다. 간첩 혐의로 엮일 수 있었기 때문에 김광일 변호사는 부림 사건 변호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세무 전문 변호사였던 후배 노무현 등에게 변호를 壙므?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으나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처럼 사법서사가 처리하던 등기 업무를 많이 수임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법 전문 변호사로 변신하고 나서 취미로 요트를 탔던 사실도 영화 속에 보였다. 주간조선은 1991년 인권변호사로 과장된 노무현 의원이 호화 요트를 소유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내용을 보도하자 노 전 대통령은 소형 요트를 임대해 연습했을 뿐인데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며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림 사건 변호를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양우석 감독은 박종철 추모 시민대회(1987년 2월) 당시 시위에 앞장선 송우석 변호사가 기소되자 부산지역 변호사 99명이 법정에 출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법원이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해 노 전 대통령은 석방됐다. 그러나 대우조선 노동자 사망사건(1987년 8월) 사인 규명에 앞장서다 노동법 제3자 개입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때 부산 지역 변호사 99명이 노무현의 변호인으로 참석했고, 재판장이 영화처럼 방청석까지 가득 찬 변호인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검사와 판사는 누구?
송우석 변호사와 치열하게 법리 다툼을 벌였던 강 검사는 새누리당 최병국 전 의원으로 알려졌다. 부산지방검찰청 공안 검사였던 최 전 의원은 부림 사건 당시 수사를 지휘했는데, 최근 부림 사건과 관련해 사과할 뜻이 없고 고민에 의한 자백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중수부장을 거쳐 대전지검 차장으로 근무할 때 대전 법조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부림 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서석구 변호사. 서 변호사는 영화와는 달리 피고인 이호철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고, 부산지법에서 진주지원으로 좌천되자 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준기자
한국스포츠 이상준기자 jun@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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