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짧은 지식과 편협(偏狹)된 시각으로 불교와 기독교를 들여다 보았을 때, 어떤 면에서는 예언(豫言)에서 시작해서 예언(豫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두 종교 모두 말세(末世)의 개념이 공히 존재하는데 기독교는 요한계시록에서의 상황과 예수님의 재림이요, 불교는 말법(末法)시대를 지나 법멸(法滅)시대에 대한 언급이 핵심적 사항이 아닐까 한다.
세부적 표현들은 달라도 두 종교 공히 "결국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니 그 전에 몸과 마음을 맑게하여 항상 기도하며, 내 이웃에게 선함을 베풀어야 하고, 사후(死後)에 극락 혹은 천국으로 가기 위해 더욱 힘써라" 로 요약되지 않을까 한다.
두 종교 모두 동,서양을 대표하는 종교라 서로 문화적 차이는 크겠으나 둘 다 말세에 대한 부분에서 가정(假定)적인 모호(模糊)함이 아니라, 결정(決定)적인 확실(確實)함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는 결국 말세가 올 것에 대한 예언이요, 그에 대한 평소의 지혜로운 행동 지침을 말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형태로건 민간신앙(民間信仰)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 근본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필자는 만물의 운명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다 정해져 있다면 조물주의 입장에서는 활인(活人)의 삶을 사는 종교인도, 무속인도, 역술인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즉, 큰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겠지만, 필자는 그 속의 작은 움직임이나 흐름은 하늘이 스스로 바꿀 수 있게 허용해 놓으셨다고 보고 있다.
육효(六爻)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인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할까 말까를 물어본 경우 그 답이 부정적이라면 그것을 안하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쉽게 말해, 이사를 가야 하는지를 물어본 경우, 가서 흉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고 나온다면 이사를 안하면 아무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사업가로써 경제적으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어떤 사람의 명(命)에서 1년후 내부 직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보였다.
당시, 필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분께 필자의 의견을 말씀 드렸다. 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빛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화를 내시거나 흥분하게 되는데 그분은 오히려 너무나 침착하게 듣고 계셨다.
그리고 잠시 후,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 그런 경우를 경험하게 되는가 보군요. 피할 수 없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그 정도를 조금이나마 약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라고 질문하셨다.
필자 입장에서는 그분의 그러한 반응이 너무나 감사했다. 대부분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는데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 방안을 요청하시니 더욱 성심을 다해 말씀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과연 다음해 믿었던 직원으로 인해 회사가 휘청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게 되었고, 그 이후 오히려 사세는 더욱 확장 되었다.
위의 경우, '1년후 어려워 진다' 라는 큰 흐름은 피해 갈 수 없었지만, 至誠(지성)이면 感天(감천)이라, 지극한 정성을 다했기에 하늘이 감동하여 흉(凶)을 길(吉)로 변화하게 만든 경우에 해당되겠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반대의 경우도 많다.
어떤 분이 연락을 해 오셨는데 매사가 너무 운명적인 관념으로 가득한 분이시라, 모든 사안에 대해 되는 것인지, 안되는 것인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시는 분 이였다.
물론, 미연에 잘못된 점을 찾아 실수를 막고자 하는 의미는 알겠으나 때로는, 성심을 다해 노력하면 바뀌는 상황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주역으로 예를 들자면, 천지비(天地丕)의 상황은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답답함'을 말해주는데 운(運)에서 이러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전쟁에서 적은 100명이요, 아군은 10명인 격이니 현실에서는 보수적으로 임해야 한다.
하지만, 천지비(天地丕) 상황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 아닐 것이니, 이 시기에는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노력 해야만 하는 시기인데,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좋지 않으니 노력도 없이 포기부터 한다면 천지비(天地丕) 상황이 끝난 이후 길(吉)한 운을 결코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운명에서 어디까지가 큰 흐름이고, 어디까지가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필자도 아직 연구 중에 있으며 지금은 명확하게 밝힐 단계는 아니다. 어쩌면, 평생 연구해도 다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분은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에서의 10년 혹은 5년 대운(大運)을 언급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필자 역시도 일부는 彭㉶磯?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아직은 연구해야 할 사안이 너무 많다.
다만, 필자가 현재까지 느끼는 바로는 至誠(지성)이면 感天(감천)의 상황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의외로 유동적인 운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현실을 보면 절망감으로 가득차 있는데 至誠(지성)으로 임하는 태도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사례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종교생활 하시는 분들에게서 그러한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필자는 그 누구에게라도 종교생활 내지는 기도하는 생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편이다.
지난 12월달, 필자는 리빙앤조이 칼럼을 통해 미국의 국운(國運)을 언급했었다. 그 자리에서 '양력 2014.1.1 ~ 2014. 1.30 에는 다른 나라와 담판에 임하여 원만한 교섭을 끌어내는 시기로써,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면 과정은 위태위태하나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는 시기' 라 밝혔는데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의미이나 그 상대국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의 오늘 ' [한미 방위비 협상 타결] 지출 투명성 얻어냈지만… 이견 생길땐 미국에 강제 못해 한계' 라는 기사를 보니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결국 우리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 기사 첫 머리에 '안보를 외국에 의존하는 근본적 한계 때문일까' 라는 문구가 자꾸 가슴에 와 닿는다.
이미 국운을 통해 예견된 현실이지만 막상 실제로 나타나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예언을 현실에서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크게 달라질 것이니 처음부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至誠(지성)의 태도를 잃지 않음이 중요하겠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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