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성규(가명ㆍ27)씨는 지난달 부모님에게 선물할 시계를 사러 백화점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인터넷 병행수입 사이트에서 46만원에 팔리는 제품이 백화점에선 79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병행수입은 수입업자가 해외 상표권자와 정식 공급계약을 맺지 않고 해외 소매상, 도매상 등에서 제품을 '알아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반면 정식루트를 통한 수입품은 가격을 본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지정된 판매점이 이를 지키도록 강제한다. 예컨대 이번 겨울 인기를 끈 캐나다구스 패딩의 경우 국내 공식 판매처는 9곳에 불과하다.
병행수입품의 장점은 싼 가격에 있다. '캐나다구스 익스페디션'은 백화점에선 125만원에 팔리지만 인터넷에선 7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미국 의류업체 폴로의 아동용 럭비 피케 티셔츠의 공식가격은 7만8,000원이지만 병행수입으론 5만원대에 구한다.
이처럼 소량을 현지에서 소매로 구매해 판매하는 병행수입품이 정식수입품보다 싼 이유는 대부분 해외 제조업체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고가 가격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15개국 주요도시의 주요 제품 가격을 비교한 결과 서울의 판매가격이 유독 높았다. 예를 들어 스토케 유모차의 경우 미국에서는 110만원대에 판매하면서도 서울에선 판매가를 160만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병행수입품은 소비자에게 계륵이었다. 정품인지 의심스럽고, 공식수입업자가 애프터서비스를 금지한 경우도 많은 탓이다. 김씨는 "값이 절반이라 병행제품을 샀지만, 제조사 대신 동네 시계방에 수리를 맡겨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식수입업체들의 고가 가격정책을 보다 못한 정부가 병행수입 활성화에 나선다. 정부는 병행수입이 늘어 가격경쟁이 벌어지면 정식 수입품가격도 떨어질 것이란 판단이다.
13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정부는 병행수입 활성화 방안 등을 담은 '수입부문 경쟁 제고 방안'을 3월까지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병행수입품에 정품인증 표시를 확대하고 애프터서비스 체계도 마련해 소비자가 병행수입품을 믿고 쓰게 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제' 대상이 확대된다. 통관인증제는 관세청이 병행수입품에 수입자, 품명, 상표명, 모델, 원산지 등 통관정보가 담긴 QR코드(통관표지)를 붙이는 제도로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해당 제품이 진품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통관인증제 대상품목 확대와 함께 통관인증업체 자격을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관세청은 병행수입업자들이 공동 애프터서비스 센터 등을 만들게 할 방침이다. 관세청이 개념을 제시하면 병행수입업자와 공식수입업자 모임인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가 실행하는 형태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은 "현재 병행수입 제품은 대형마트의 특별행사나 영세한 업체를 통해 일회적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의 신뢰가 낮고 애프터서비스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3월부터 병행수입 활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수입품 가격이 낮아져 소비자 선택권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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