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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1월 14일] 후흑의 정치, 민낯의 정치

입력
2014.01.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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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양의 제왕학에는 후흑론(厚黑論)이 있다. '얼굴은 두텁고 마음은 검다'는 후흑론의 요체는 야심과 술수로 가득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더없이 선하고 바르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착하다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아니라, 선한 정치를 실천하는 것처럼 보여야 백성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다. 제갈공명을 책사로 모시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가고, 적장이 잡혀오면 버선발로 내려가 포승줄을 풀어주며 껴안는다. 만나주지도 않는 서생에 왜 무례함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장졸들을 죽인 적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러나 유비는 검은 마음을 숨기고 하얀 얼굴로 다가선다. 이에 감복한 공명과 적장은 눈물로 충성을 다짐한다. 이를 본 신하들과 백성들은 감동하고, 후세 사가들은 아름다운 일화로 묘사한다.

지금의 정치에서도 후흑론은 통한다. 조금 복잡할 뿐이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시대 흐름에 맞춰 말(言)을 바꾸고, 세를 얻기 위해 말(馬)을 갈아 탄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대권을 거머쥔 승자들이 다 그랬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ㆍ29 선언은 사전 각본이었지만 당시에는 노태우 후보의 고독한 결단으로 비쳐져 승부를 갈랐다. YS는 그토록 증오하던 민정당 세력과 손잡는 3당 합당으로, DJ는 노선과 이념이 전혀 다른 JP와 연합해 정권을 잡았다. 노무현 후보는 DJ 중심의 민주당을 타고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이들 모두 집권 후에는 표변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6ㆍ29 선언의 막후 연출자였던 전두환 세력을 제거했고, YS는 구 민정계를 배제했으며, DJ는 JP와 결별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을 깼다. 마음에도 없는 말(馬)을 타고 달리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가차없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말(言)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YS는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등록,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개혁을 단행했고, DJ는 외환위기의 와중에서도 생산적 복지, 사회안전망 구축,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자신의 패러다임을 실천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정치혁신, 사회개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세력 교체를 서슴지 않던 후흑의 양태가 2007년 대선부터는 시대정신에 맞춘 말 바꾸기로 변했다. 이명박 정부는 DJㆍ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하고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공약을 내세워 새로운 성장의 환상을 퍼트렸다. 대북 포용정책을 '퍼주기'로 비난하면서 강한 안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DJ 정부는 98년 외환위기 직후 마이너스6.9%에도 불구하고 평균 4.5% 플러스 성장을 했고, 노무현 정부는 4.3% 성장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2.9%에 그쳤다. 안보 면에서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이라는 치욕을 당했다.

국민들이 환상을 깼을 때 이명박 대통령에 대적하는 박근혜 의원이 보였다. 그는 '여당 내 야당'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짧지만 강렬한 비판을 했다. 그리고 대선을 맞아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확대라는 진보적 아젠다를 과감히 채택, 3대 공약으로 삼으면서 중도세력의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집권 2년 차를 맞은 지금, 이들 공약은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이 실체를 드러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박근혜 정부는 1년도 안돼 민낯을 보인 셈이다. YS, DJ, 노무현 정부는 말을 갈아탔지만, 나름의 명분을 제시하고 흐름도 탔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과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런 흐름도 없었다.

사람들이 가면무도회를 보고 있었다고 깨닫는 순간, 허망해진다. 신뢰는 흔들리고 위기는 다가온다. 이미 드러난 민낯을 가면으로 다시 가릴 수는 없다. 민낯으로 마음을 얻기는 무척 힘들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다. 더디지만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 더불어 가는 민낯의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소통의 정치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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