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원하는 교회상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저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염수정(71ㆍ안드레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13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주교관 앞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 축하식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염 추기경이 이날 이 같은 소감을 말하자 그가 교황의 개혁 성향에 맞춰 현실 참여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날 축하식에는 사제, 신자 등 300여명이 참석해 행사 중간중간 손뼉을 치며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등의 환호를 보냈다. 이 자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교황청 대사와 천주교 신자인 박용만 두산 회장,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도 함께했다.
염 추기경은 "여러분 무척 춥죠?"라고 말문을 연 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황님의 뜻을 순명(順命)하겠다"며 "저만 빼고 많이들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더 두렵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지금은 도덕과 정치가 위기에 처해 있고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이 만연해 있다"며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모아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고 모든 세대가 깊은 연대감을 갖고 한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는데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께서 하신 노력을 존경하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석 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교황께서 한국 천주교뿐 아니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해 세 번째 추기경을 임명하신 것 같다"며 "염 추기경이 하느님의 뜻을 잘 받들어 추기경 직을 잘 수행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교황께서 염 추기경을 임명하신 것은 한국 교회가 아시아 교회와 세계 교회에 더 크게 기여해줄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웃 종교들도 새 추기경의 탄생을 축하했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는 "염 추기경께서 한국 기독교 공동체가 연합하고 일치하는 일에 앞장 서시길 바란다"며 서임을 축하했다.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종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염 추기경의 말씀에 많은 사람이 공감과 기대를 하고 있다"고 축하했다.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은 "한국 천주교 위상의 반영일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계의 경사"라고 말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염 추기경에게 전화해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국민의 바람이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새로운 추기경으로서 천주교 내 분열된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며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참 일꾼이 되시기를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 서임을 환영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 성향의 추기경을 임명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했던 평신도단체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추진위원회 등 가톨릭 진보세력에게 보수적인 염 추기경 서임은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 당선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으로 여겨진다. 한 평신도는 인터넷 언론 기고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가 다시 박근혜 정권과 보수적인 추기경의 이중적 질곡에 던져진 듯 느껴진다"고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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