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파업유보의 조건으로 정부에 새로운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면서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가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쟁점이 새롭게 부상했다. 가입자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과 경제단체, 시민단체들은 "협의체에는 가입자 단체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협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협의체를 먼저 제안한 것은 정부였다. 그런데 의협이 12일 여기에는 불참하겠다며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어젠다와 조건을 갖고 논의하기 위해 새로운 협의체를 정부측에 제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협의체를 제안한 속내가, 앞으로 논의될 수가 인상 등을 놓고 의협 측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가입자 대표를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노환규 의협 회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안건과 구성 등) 모든 것을 14일 비상대책위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은 "수가는 보험료 인상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정부가 의료계와만 협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복지부가 제안한 협의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은 아니다"며 여지를 남겼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처음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큰 협의체를 생각하고 제안했는데, 꼭 그 방식이 아니더라도 의사단체와 정부가 소협의체를 구성하면 건정심 구조개편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보다 분명하게 의협의 제안을 수용할 뜻을 밝혔다.
의협은 수가 등 주요 정책을 협의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를 의료계 대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며 2012~2013년에 걸쳐 8개월동안 건정심에 불참했었다. 현재 건정심 구성원은 시민단체 등 가입자 대표, 의료계 등 공급자 대표, 정부와 전문가 등 공익대표가 3분의 1씩 차지하고 있는데 의협은 이를 가입자 대표와 공급자 대표 반반씩으로 바꾸는 법안을 제출해 둔 상태다.
이에 대해 건정심 위원인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의협의 의료민영화 반대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가 대등하게 구성된 건정심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을 협의체에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영리병원 논란, 원격의료 추진 등 정부가 빌미를 제공, 의협이 이 기회에 수가를 올리려 하는 것"이라며 "수가인상을 위해 정부가 의료계가 야합하듯 보험료를 퍼주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수가를 1% 인상하면 건보재정에서 3,000억원을 더 지출해야 하는데 이 경우, 보험료 인상률이 0.85%가 돼야 상쇄할 수 있다. 최근 2년간은 수가 인상률이 보험료 인상률보다 높았다.
원격진료 허용과 관련된 의료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상정은 유보될 것으로 보이지만, 초진환자에게 원격의료를 허용할지도 협의체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벽ㆍ오지 환자에 대해서는 초진부터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상혁 의협 기획이사는 "초진의 원격진료 허용은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았고 진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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