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트레이드 마크섬김의 자세로 과천시향 단원들 대해…9시간 작업에 '작은 거인'이라 불리기도브람스·베토벤 바이올린 소타나 전곡무대에 올린 남편 정준수씨도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 못지않아● 한국 클래식계에 대한 평가…"오케스트라·객석의 수준 높아졌지만인색한 문화 예산 때문에 실적에만 치중""국내 연주가 괄목 성장에도유명 연주가만 찾는 관객도 문제"● 두 딸도 클래식 시장에 발 담궈"부모님 명성이 부담도 됐지만끊임없는 노력 본받게 됐죠소외계층 위한 재능기부 실천도 계획"
먼저 쇼스타코비치의 남성적인 교향곡이 콘서트홀을 공격적으로 압도한다. 뒤를 이어 브람스의 귀에 익은 '대학축전 서곡'의 마지막 선율이 종지부를 찍자마자 기다렸다는 우렁찬 환호와 박수가 터진다. 지휘자의 만면에 웃음꽃이 환하게 핀다. 국내 첫 여성 지휘자라는 수식어를 넉넉히 받쳐주는 압도적 음악이 있어 지켜보는 이들을 든든하게 한다. 2008년 과천시립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를 담은 실황 앨범의 타이틀,'New Revolution(새 혁명)'이란 결코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나는 국내 첫 여성 지휘자라는 기록보다는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생각해 왔다."지휘봉을 잡은 이래 인천 빼놓고는 제주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서 모두 지휘했다. 그 쉼 없는 행보는 적어도 자신이 몸 담은 지휘 분야에서는 성차별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바램과 일치한다. 바이올린 주자 정준수(59)씨와의 사이에 정담온(27ㆍ경희대 음대 대학원 박사ㆍ클라리넷) 예온(19ㆍ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ㆍ지휘 전공) 등 두 딸을 둔 김경희(56ㆍ숙명여대 음대 관현악과 교수)씨에게는 매 순간이 도전이다.
가까이는 9일 예체능 입시 때, 이들 부부는 시험감독관으로 부름 받아 잔뜩 긴장했다. 특히 김경희씨의 경우는 숙대에서는 관악기, 경희대에서는 타악기 감독으로 나서야 했다. 1991년 교수가 되고 나서 줄곧 치러오는 연례 행사다. 600여명을 하루에 채점하는 것은 중노동이다. "외국의 예체능 대입에서는 자기 제자를 구두로 뽑는 게 관례화돼 있다시피 하지만 여기는 수시, 정시 등으로 나뉘어 객관적 과정을 거치는 셈이죠."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예체능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답인 셈이다.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상임 지휘자로 있는 과천시립교향악단 만들 때의 벅찬 경험에는 못 비길 바다.
과천시향 상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국무총리상은 작은 보상이었다. 과천 청소년교향악단 단장 시절 신년음악회 등에서 시장과 시의원 등을 만나 1시간 짜리 프리젠테이션 작업을 통해 과천시향의 필요성을 적극 개진하는 등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결과다. 페미니즘이라는 대세에 의탁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나아갔다.
여성 지휘자의 장점을 묻는 상투적 질문부터가 그에게는 어불성설이었다. "없다"는 그의 답은 너무나 확실하고 즉각적이었다."(발전의 수준은)개개인의 역량과 성격에 따른 것이죠." 작업에 열이 오르면 줄곧 9시간 동안 서 있었다. 작고한 원로 평론가 한상우는 그를 '작은 거인'으로 일컫기까지 했다.
예술가의 모임이라는 대단히 개성적인 집단을 이끌어 온 데에는 나름의 페미니즘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가 과천시향에 특별히 요청한 것이 있다면 인간미 넘치는 팀웍이다. "단원들에게는 섬김의 자세로 나아가죠. 나의 트레이드 마크라면'부드러운 카리스마'쯤 되겠죠?"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한 독선적 지휘자 스타일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 같은 성향의 연장이다.
그는 우리 지휘자가 양적 질적으로 향상하는 등 오케스트라만을 놓고 따지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객석도 그 같은 추세에 발맞춰 가고 있어 오케스트라가 일반인의 생활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늘 인색한 문화 예산은 항상 걸림돌이라는 지적. 연주 회수 등 외형적 실적에 매달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1975년 학생 신분으로 서울챔버오케스트라 창단 멤버가 됐을 만큼 실력파였던 남편은 현재 그 악단 악장이다. 그의 시각은 보다 내부 자향적이다. 그는 "지금 한국 클래식계는 연주가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지만 관객이 그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부조화를 지적한다. "특히 유럽에 비긴다면 심각할 정도인데 유명 연주가가 와야 표 팔리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죠."독일서 수업한 큰 딸은 "유학 시절 학생 연주회 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만원을 이루던 광경이 부럽기만 했다"고 운을 맞췄다.
이들 네 식구는 영락없는 동지다. "무심히 둔 딸들은 결국 본인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엄마의 말에는 일에 치여 제대로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약간의 미안함도 묻어난다. "큰 아이는 초등 5학년부터 관악에, 둘째는 고 3부터 지휘에 還??갖더군요. 30년을 지휘만 했으니 한 사이클은 막 넘긴 셈인데 아이들이 어느 새 다 컸네요."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연주한 적은 없지만 간간이 두 명이 함께 하는 콘서트의 자리는 있었다.
김씨가 부산시향, 수원시향 등과 중국에 가서 연주했을 때, 차이콥스키 생상 브루흐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편과 협연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행여 잊어버리거나 실수할까 봐 많이 신경 쓰였다. 제대로 지휘가 잘 안 됐을 정도였다." 유학 준비 언어학원에서 남편을 보는 순간 인연임을 직감하고는 먼저 고백한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독일통일 전 베를린예술대학 음악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이들은 1988년 귀국, 영원한 동반자가 됐지만 음악을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초심이다.
남편 정씨는 오래 삭힌 꿈을 자신의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만 갖고 만든 3월 독주회는 그 일부다. "평소 별로 연주 안 되던 곡들이죠. 무대에 오르더라도 맛 뵈기 정도로만 해 왔어요." 모두 대단한 난곡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기 연구의 일부라는 설명에서 확실한 자기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실제 그는 브람스(피아노 주혜성)와 베토벤(피아노 한영혜)이 각각 3곡씩 지은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2009년에 전곡 연주 무대로 실현,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 6월 서울 체임버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협연한 무대를 가장 의미 있었던 일로 꼽는다. "너무나 잘 알려져 부담스러웠고, 그만큼 제대로 연주된 없던 작품이니까요."
음악에 관한 것이라면 신중한 아버지이지만 딸이 연주할 때는 전전긍긍이다. "큰 아이가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지난 6월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연주했는데 내가 더 조마조마 하더라구요." 그 덕일까, 성공적으로 치른 큰 딸은 이어 가진 브람스 리사이틀의 앵콜 무대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협연할 수 있었다. 딸들이 음악에서 각각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자는 데 부부는 한 마음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현실적으로 무대가 제한된 데다 포화 상태여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은 더욱 중요하죠."
이 가족은 자신들 모두가 함께 협연할 수 있는 작품을 구하기가 다리우스 미요의 현대곡을 빼고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매우 아쉬워한다. 찬조 출연의 형식이긴 하지만 어쩌다 만나는 협연을 앞두고 표현방식 등 실제적인 문제 에 대해 벌였던 진지한 토론의 기억은 이들에게 소중하다.
가족의 출발점에는 독일 클래식 음악이 있다. 먼저 어머니 김씨는 젊은 시절 카라얀의 지휘에 온통 매료돼 있던 음악학도였다."베를린필의 연주를 보고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환상을, 더욱 정확히는 지휘자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오직 베를린필만 생각했다."장기간 집권, 인간적 결함과 구설 등 카라얀을 둘러싸고 나온 끊임없는 잡음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 지휘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질 정도였다.
인간미 가득한 단체를 지향하는 현재 그의 리더십과는 천양지차다. 단원들에 대한 믿음이 유별나다. 그는"과천시향은 지휘자가 이끄는 만큼 해내는 연주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한다. 몇몇 실황 음반도 녹음 기술상의 문제만 빼면 손색없다고 믿는다.
2012년 12월 EBS TV는 '꿈을 연주하다'라는 제하에 한국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된 김씨를 적극 조명한 바 있다. 그는 클래식 시장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발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느릿한 발전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큰 딸은 소외 계층을 위한 자선 연주 등 재능 기부의 실천으로 이어나갈 생각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채리티앙상블이 고아원과 양로원 연주에 나설 때면 빠트리지 않으려 노력해요."
일가를 이룬 부모의 딸들로서 이들은 입을 모은다. "부모의 이름이 고등학교까지는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축적돼 가면서 두 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실천해 오셨는지 알게 됐어요." 눈 뜨고 나서 잘 때까지 연주하고 연구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내면화돼 있다.
이 가족은 발효라는 공정을 거쳐 서서히 숙성돼 가는 문화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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