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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1월 13일] 추운 겨울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4.01.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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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미국에 20년 만에 몰아닥친 추위를 직접 경험하게 됐다. 엄청 춥기도 하거니와 차에 붙은 눈과 얼음을 아침마다 치우는 것도 고역이었다. 지난해 한국이 그랬듯이 북미에도 '극지 소용돌이 (Polar vortex)'라는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내려온 탓이다. 크게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있지만, 그보다 작은 규모에서는 크고 작은 '극한 기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후가 변화하면 지구에 사는 생물들도 다양한 반응과 변화를 보인다. 사실 온도나 강수량의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20여 년간 생태학자들의 주요 연구 관심사였다. 필자의 핵심 연구 주제도 이런 관심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은 기온 몇 도 올라가고, 비 조금 덜 온다고 이 광활한 대지나 자연이 크게 변할까 의심한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렇게 작게 보이는 기후변화가 이미 생태계를 크게 바꾸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저지 주 중남부는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데 지난 몇 년간 소나무좀 (Pine beetle)이 퍼져 엄청난 면적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나무 재선충 감염 때문에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듯이, 여기서도 감염된 나무를 잘라야 하는지 아니면 농약이라도 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건강한 사람이 병원균에 약간 노출돼도 금방 회복 되듯이 이 벌레가 침입해도 소나무는 밖으로 분비하는 수액을 통해 벌레를 배출하고 잘 견딘다. 그런데 벌레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나무줄기 속의 관에 구멍을 내서 영양분 이동을 방해하고, 결국 쌀알 크기도 안 되는 벌레들이 10m 되는 나무들을 죽게 만든다. 이렇게 소나무좀이 창궐하는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것은 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뉴저지 주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간 1.4도 상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면 이 벌레 알들이 대부분 죽어 버려 다음 해에는 피해가 없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일어나면서 추운 겨울이 사라졌다. 뉴저지의 경우 1996년에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을 지낸 후 이렇게 추운 날은 드물었다. 즉 평균 기온의 상승은 미미하지만 극한으로 추운 날이 사라지자 2000년대 초반부터 소나무좀 창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숲이 파괴되면, 단지 경치가 나빠지거나 목재가 없어지는 직접적인 피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작은 벌레 때문에 산림에 저장된 탄소가 파괴돼 대기로 배출되고 기후변화가 더욱 가속된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최근에 발표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맹그로브, 이른바'홍수림 (紅樹林)'이라고 부르는 생태계의 확산이다. 원래 이 생태계는 따뜻한 바닷가에서 발견되는데 지난 30여 년 간 인공위성 영상을 분석해본 결과, 플로리다의 북위 27도 이상의 지역에서 홍수림의 면적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로리다 주 평균 기온의 상승이 원인일 수도 있고,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는 것, 해안가의 수질이 나빠지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 또 사람들이 농경지나 도시를 계속 개발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논문의 분석 결과를 보면 플로리다 홍수림의 확장은 바로 일 년 중 영하 4도가 되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만일 영하 4도 이하가 되는 날의 숫자가 늘어나면 홍수림에 사는 식물들이 견디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식물들이 하나둘씩 자라나기 시작해 십수 년 내에 새로운 홍수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 년 중 추운 날 하루 이틀이 더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만 자연에게는 수백 ㎢ 면적의 생태계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문제이다.

초등학교 시절, 추운 겨울날 학교 가기 싫어 불평하는 나에게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겨울에 날이 추워야 내년 가을에 벼가 잘되고 네가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우린 이미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많은 상식을 가지고 있다. 과학의 복잡한 이론과 관찰은 이것을 더욱 확증하고 있을 뿐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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