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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월 13일] 키신저와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다시 만난다면

입력
2014.01.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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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 베이징을 극비 방문한 헨리 키신저 미국 외교안보특별보좌관과 저우언라이(周恩來) 공산당 총리가 조어대 국빈관에서 이틀간 무릎을 맞댔다. 역사적인 첫날 대화는 주로 아시아를 화제로 7시간 동안 진행됐다. 어떤 때는 신경전과 떠보기가, 또 어떤 때는 상대 신뢰를 얻으려는 솔직한 이야기가 오갔다. 30년간 비밀에 부쳐졌던 46쪽 분량의 이 대화록 가운데 동북아 부분은 한반도 문제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동북아 정세가 어떤 구도로 진행됐는지 짐작하기에 이 대화처럼 명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은 대화록 중 먼저 따지듯 질문을 던진 저우 총리의 발언 요약이다. "2차대전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미국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게 불가능해졌다. 일본은 그 사이 강해졌다. 만약 미국이 극동에서 철수한다면 일본을 강화시켜 아시아를 통제하는 미국의 전위부대 역할을 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미국이 일본을 보호한 덕에 일본은 국방비 지출없이 경제력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미국이 한국에 4만명이나 되는 미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뭔가. 미국이 7,000억달러에 달하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며 얻는 결과는 무엇인가."

키신저 보좌관은 설득조로 장황하리만치 길게 답변한다. "닉슨 대통령이 다음 임기에는 전부는 아니지만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다. 만약 한반도에 일본군이 주둔한다면, 중국은 미군보다는 일본군 때문에 훨씬 더 불안해할 것으로 본다. 미국은 강한 일본과 강한 중국 가운데 강한 중국이 팽창주의가 아닐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에는 그런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일본은 그러한 잠재적 경향들을 가지고 있다. 경제, 사회적으로 힘이 세진 일본이 막강 군사력을 일으킬 수 있고 팽창주의자들의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 이런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일본이 가지게 될 군사적 잠재력과는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패러독스가 하나 있는데, 미일 간 군사동맹이 일본이 공격적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자신들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군사력을 증강할 것이다. 이들은 핵무기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데, 그러면 중국이 우려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론상으로 보면, 미군이 철수해 일본을 재무장토록 하고, 일본과 중국이 태평양에서 경쟁토록 만드는 게 미국에게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중무장한 일본은 쉽게 1930년대의 정책들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일본에 대한 미중 양국의 이해관계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누구도 일본의 재무장을 원하지 않는다. 주일미군은 방어용이며, 이는 일본의 재무장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일본을 중국 대항용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우리 모두에게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동북아 정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경제발전에 성공했고 북한은 일본과 한국을 공격할 핵무기를 가졌다. 변화의 핵심은 물론 미국과 새로운 대국(大國)관계를 논할 만큼 국력이 커진 중국이다.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자마자 소련과 국경분쟁을 시작한 것처럼, 자신감에 찬 중국은 동ㆍ남중국해에서 주변국과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를 명분 삼아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화하고, 미국은 이런 일본을 적절히 이용한 아시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4년 신년에 키신저와 고인이 된 저우가 다시 만났다고 가정하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짚을까. 이번에는 키신저가 먼저 목소리를 높일게 분명하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겠다는 것인가." 저우의 대답은 이럴 것 같다. "그렇다고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건 미국에게도 위험한 짓이란 걸 왜 모르는가."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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