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이 올해부터 '큐브'라는 새 브랜드로 오페라하우스 기획 공연 시리즈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국내 대표 문화예술 공간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공연 기획보다 대관 등 수익사업에 치중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 온 예술의전당이 '기획 공연 활성화'를 목표로 내놓은 계획이다.
9편의 올해 기획 공연은 다시 네 개의 하위 브랜드로 묶인다. 주목 받는 극작가 겸 연출가 장우재의 신작 연극 '환도열차'(3월 자유소극장)와 동명의 영화를 무대화한 연극 '8월의 크리스마스'(8월 자유소극장) 등은 초연을 의미하는 '프리미어' 시리즈로 선보인다. 연출가 서재형, 극작가 한아름 부부의 신작 '메피스토'(4월 CJ토월극장)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클래식스'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닉 페인의 '컨스텔레이션'(5월 자유소극장), 닉 디어의 '프랑켄슈타인'(10월 CJ토월극장), 니나 레인의 '트라이브스'(11월 자유소극장) 등 영국 극작가들의 최신작은 '영국' 시리즈다. 4월말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가족 오페라 '어린왕자'와 국립발레단 공동 주최의 연말 레퍼토리 '호두까기 인형'은 '패밀리' 시리즈로 만날 수 있다.
공공 공연장의 기획 공연이 중요한 이유는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짐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상업단체가 할 수 없는 실험적 시도로 장르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예술의전당 기획 시리즈를 들여다 보면 기획 공연의 본질인 신선한 작품 구성보다 브랜드 만들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9편 중 예술의전당 자체 기획은 '환도열차' '메피스토' '컨스텔레이션' 등 연극 3편과 오페라 '어린왕자'까지 4편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4월에 공연할 '어린왕자'는 창작진도 못 정했다. 나머지 연극은 연극열전,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등 이미 그 자체로 상당한 브랜드력을 갖춘 연극 기획사들과 공동 제작한다.
극장의 이름을 내건 기획 공연 브랜드로 묶기에는 공연 일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예술의전당 대표 공간인 2,2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은 올해 공연일이 179일인데 기획 공연은 8일간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뿐이다. 1,000석 규모의 CJ토월극장은 216일 중 20% 남짓이 기획 공연이다. 300석 규모의 자유소극장만이 기획 공연 비중이 40% 이상으로 비교적 높다.
"예술의전당이 기획 사업을 열심히 할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봐 달라"며 "올해는 준비 기간이 짧아 부족한 점이 있지만 내년 기획에는 예술의전당만의 철학과 주제의식을 담을 것"이라고 공연사업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어쩐지 홍보용 브랜드에 기획 공연의 타이틀을 붙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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