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대세인 여론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최저임금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지사 후보가 선거광고 방송 하루 만에 공약을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9일 미국 시카고트리뷴에 따르면 일리노이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경선 후보 브루스 로너(56)는 "내가 경솔해 실수를 저질렀다"며 최저임금을 시간당 1달러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억만장자 사업가인 그는 한달 전쯤 남부 소도시에서 열린 후보 토론회에서 "주지사에 당선되면 일리노이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8.25달러(약 8,76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연방정부 수준인 7.25달러(약 7,700원)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발언은 당시 큰 반발을 사지 않았지만 7일부터 라디오 선거광고로 시카고 전역에 퍼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빈부격차 확대와 임금 불평등 문제를 이슈화하고, 민주당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10.10달러(1만730원)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로너는 "경영자 입장에서, 일리노이주 최저임금이 전국 수준과 같아야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하며 "전국의 최저임금이 같은 수준으로 인상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로너는 "민주당이 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며 계급투쟁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기업을 사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하나 실제로는 번영의 원천"이라며 "기업에 적대적인 생각을 갖는 한 높은 실업률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당 소속 경쟁 후보 3명마저 그에게 "정치적 자살행위"라며 "억만장자인 로너가 일반 유권자와 얼마나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 입증했다"고 비난했다. 주식투자자인 그는 2012년 소득이 5,300만 달러(약 565억원)에 달해 일리노이 선출직 공무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최고 갑부라고 시카고트리뷴은 설명했다. 노동조합도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싸우지 말고 빈곤에 맞서 싸워달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 퀴니피악대학이 4~7일 유권자 1,48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했고, 반대는 27%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자도 과반인 52%가 찬성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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