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보듯, 안녕하지 못한 모습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종교사학자이자 철학자로 프랑스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전지구적으로 처한 이 같은 상황을 '일빙(ill-being)'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느끼는 무기력함, 빈약한 사회관계망, 물질적 빈곤, 허약한 건강 상태, 사회 불안의 5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해 만들어 내는 상태"로 말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순간, 다시 말해 인류학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킨 시기를 둘로 나눈다. 첫 번째 시기는 1만2,000년 전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의 전환이다. 두 번째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시작한 근대의 모든 잠재성이 만개한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다.
그러나 저자는 "근대 세계를 이루는 비판 이성, 개인화, 세계화가 쉼 없이 작동하고 있고 기술혁명도 끊임없이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세계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근대성에 대한 환멸이 커지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제외한, 근대의 기본을 이루는 주요 담론 대부분이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앞에는 조금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유형의 담론이 제시됐다고 한다. 앞으로의 도주(무제한의 진보)와 뒤로의 복귀(탈세계화, 근본적인 생태학, 여러 종교의 반개혁주의)라는 밀어붙이기 해법이다. 예를 들어 석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앞으로 지구에 얼마나 엄청난 해를 입힐지 고려하지 않은 채 앞다퉈 셰일 가스를 시추하는 행위도 일종의 밀어붙이기 해법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와 같은 도전 앞에서 잃어버린 황금기 같은 과거로 뒤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허망한 해법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해법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 "다양한 위기의 공통된 원인이 무엇인지, 현재 지배 시스템의 논리를 전환하는 과제의 성패가 무엇인지, 우리 손에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를 통해 현재 지배 시스템의 논리가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설한다.
그런데 저자는 "새로운 세계 문명의 기본 토대를 견고히 하려면 다양한 여러 문화가 서로 대화해 모든 문화에 공통된 보편적인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류 문명이 남긴 진리, 정의, 존중, 자유, 사랑, 아름다움 등 6대 가치를 명확히 재발견하고 있다. 또한 공포와 탐욕을 부르는 양적 논리와는 다른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근대사회에서 탄생한 '개인'이라는 개념이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에 따라 위대한 순간에 발생했던 개인주의 혁명을 통찰한다. 이를 통해 네오 르네상스의 토대가 될 가치와 세계관에 대한 중대한 철학적 문제를 예리하게 밝혀낸다. '탐욕에서 행복한 절제로, 낙담에서 참여의 길로,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외면에서 내면으로, 좌뇌에서 우뇌로,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라는.
그렇지만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라는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의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판도라'처럼 비현실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종교와 군주제가 지배하던 18세기 유럽의 몇몇 사상가가 갈구했던 민주주의 국가 같은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란다.
더 나은 세상인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는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신 스스로 당신이 바라는 세상의 변화가 되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빌려 저자는 스스로의 의식혁명을 촉구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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