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The Selfish Giant)에는 거인이 등장한다.
자신의 정원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거칠게 내쫓고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을 내거는 등 괴팍한 거인이다. 아이들이 떠나가 버린 거인의 정원에는 찬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만 계속된다.
고독 속에 갇혀 살던 거인은 순수한 소녀 '머시'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스스로 담장을 허물어 버리고 정원에는 봄이 찾아온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안팎까지 떨어진 9일 오후 서울 예장동 남산창작센터 제1연습실에도 거인이 있었다. '욕심쟁이 거인'을 모티브로 삼은 뮤지컬 '로스트 가든'에 출연하는 그룹 'god' 출신 가수 김태우(33)다.
이 작품에서 거인 역을 맡은 김태우는 "(소준영) 총감독님과 첫 미팅할 때 삽화로 거인의 캐릭터를 그렸는데 딱 저더라고요"라면서 "그래서 선택했습니다"며 웃었다. "외형은 김태우지만, 내면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이기적인 거인과 그에게 진정한 위로를 선물한 수줍음 많은 소녀의 이야기다. 자신만의 성에 갇혀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거인은 현대인을 표상한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서정적인 음악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표출한 극이에요. 바쁘게 살아가지만, 외로운 현대인들이요. '머시'는 그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매개체 같은 역이죠. 제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데 그런 것을 표현 해야 해서 곤란하기도 해요. 하하하."
창작극이라는 점이 특히 매력이다.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 벤츠 아레나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3회에 걸쳐 2만 여명을 끌어 모았다. 김태우는 당시 거인을 맡았다.
"'로스트 가든'이 계속되고 다른 분이 거인을 맡게 되면,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참조할 텐데 생각만으로도 벅찹니다"며 즐거워했다. 최종 목표는 브로드웨이 진출이다. "그 목표의 출발선상에 서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출연할 수밖에 없었죠."
항상 밝아 보이는 김태우에게도 거인처럼 외로운 구석이 있다. "제가 늘 가지고 있던 부분인데 인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라면서 "그렇다고 제가 가지고 있는 고독이 우울한 것은 아니에요. 헤쳐나가야 할 두려움이 고독으로 표현되는 거죠"라고 전했다.
가장 힘든 점은 거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인은 행동이 크지 않아요. 몸의 각도를 조금씩 변하게 해서 그의 행동과 심리를 표현해야 하죠. 크게 보면, 움직임이 없는데 세세한 동작이 많은 거죠. 제가 연기를 해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점이 너무 힘들었어요."
거인처럼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가 있을까. 망설임 없이 "음악"이라고 답했다. "음악을 통해서 변화됐고,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죠."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에서 '콰지모토'를 연기한 프랑스 뮤지컬배우 제롬 콜레(42)가 김태우와 함께 거인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바디 랭귀지도 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쓰면서 소통하고 있어요. 제롬 형님이 한국말을 배우는 중입니다. 그런데 극에 참여하는 마음이 똑같아서 굳이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통하더라고요. "
앞서 김태우는 2006년 '알타보이즈'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번이 두 번째 출연작이다. "가수들이 뮤지컬을 많이 하는데 사실 달갑지 않은 시선도 있죠. 이 공연이 끝났을 때 많은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해요."
그룹 '티아라' 멤버 전보람(28)이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소녀인 머시를 연기한다. 2010년 '진짜진짜 좋아해'를 통해 뮤지컬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이번이 두 번째 뮤지컬이다.
17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경기 용인 포은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김태우가 무대에 오르는 날은 한국어, 제롬이 공연하는 날은 영어로 진행된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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