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가구나 옷 같은 것들을 제 스스로 만들어 쓰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 말이다. 부탄을 여행할 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부탄 사람들에게 반했다. 그중 하나는 그들이 제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삶을 아직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여자들은 제가 입을 옷을 손수 짰고, 도끼를 들고 직접 나무를 팼다.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집을 지을 줄 알고, 활로 멧돼지를 잡았다. 남자들은 키가 작았지만 당당하고 힘이 좋았다. 여자들은 피부가 거칠었지만 잘 웃고 생기 넘쳤다.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그들이 그 모든 일을 신명 나서 해낸다는 거였다. 놀이와 노동이 분리되지 않은 삶이 그곳에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가 구별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느긋하게 힘 뺀 자세로, 서툴면 서툰 대로,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무엇이든 직접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문가가 만든 공산품을 돈으로 사는 삶을 살다 온 나는 그게 참 신기하고 부러웠다.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참가하는 마르쉐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아마추어들의 장터다. 남산에서 잣을 따고 옥상에서 바질을 키워 페스토를 만들어 파는 영어 강사, 공방에서 직접 만든 도마와 접시를 들고 나오는 사진가, 도시의 한 귀퉁이에 텃밭을 일궈 키운 작물로 효소를 만들어 판매하는 직장 여성, 취미로 뜬 모자나 수세미를 선보이는 20대 남성 등등. 옥상 농사를 짓는 나는 직접 키운 민트로 모히토를 만들어 판다. 대부분 전업 요리사도 아니고, 전업 목수도 아니며, 전업 농부도 아니다. 나 역시 바텐더 자격증 같은 것은 없다. 인도식 짜이, 브라질의 국민 칵테일 카이피리냐, 프랑스의 겨울 음료 뱅쇼처럼 내가 파는 음료는 모두 여행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끄럼 없이 기꺼이 자신의 솜씨를 드러낸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에 용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추어의 장점 아닌가.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소비만 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 창조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린다. 잘 팔리면 좋지만 잘 팔리지 않아도 괜찮다. 직접 만든 무언가를 들고 장터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뿌듯하고, 스스로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낯선 경험도 설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손을 쓰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손은 지금 컴퓨터의 자판을 누르거나, 스마트폰을 터치하거나,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데만 집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몇십 년 전까지 일상의 많은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삶을 살았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가 흘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소비의 방식에도 반기를 드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소로가 그랬다. "소박한 삶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조금 덜 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저마다의 취향을 살려 직접 만들어 쓰는 일상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성도 없고, 가격은 일방적인 공산품을 버리고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드는 물건이라니 상상만으로 근사하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산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는 일의 은유 같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해본 사람은 안다. 그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밤이 길고 긴 겨울이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서툰 붓질로 그림을 그리고, 한 땀 한 땀 바늘을 놀려 목도리를 뜨고, 또 누군가는 익숙지 않은 망치질로 선반을 만들고…, 그렇게 겨울밤을 밝히는 이들이 곳곳에 있으리라. 봄이 오면 저마다 만들어낸 것을 들고 나와 솜씨를 선보이자. 그래서 더 많은 마르쉐를 방방곡곡에 만들어보자.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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