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철도노조 파업 사태는 우리 사회의 누적된 모순을 드러낸 생생한 현장이었다. 당장 30조원이 넘는 철도 부채만 해도 그 내면에는 정부 정책 실패, 낙하산 인사에 의한 경영 실패, 기존 직원들의 철밥통 보호, 낙후한 철도 경쟁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 문제들은 보수ㆍ진보의 기존 잣대로 풀 수 없는 것이건만, 늘 그렇듯 우리 사회는 자신들만의 이념적 색안경을 쓰고 한바탕 진영 싸움을 벌였다.
철도 뿐만 아니라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여론의 눈총을 받아온 공기업을 개혁하자는 당위성을 부정하기 어려울텐데도 진보 진영은 '민영화=악, 공공성=선'이라는 단순 도식만 들먹이며 노조를 감싸는 데 급급했다. 직원 3만명 규모의 거대 회사의 평균 임금이 6,000만원을 넘는다면 이는 재벌 대기업급 대우에 육박하는 수준인데도 이를 근로자 평균임금(연 2,9000만원)과 견주는 태도에선 과연 한국 고용시장의 현실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코레일이 기존 직원들의 철밥통 고용을 지키기 위해 신규 정규직은 극히 소규모(2008년 10명, 2009년 9명 등)만 뽑아 청년고용이 부진한 실태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도 이를 지적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 같은 고임금 근로자들이 3만명이나 되는 조직이 매년 4,000억~5,000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연 5,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내는데 이를 모두 세금으로 보전해달라는 식의 주장을 한다면 어떤 납세자가 동의할 수 있을까. 예컨대 영업적자의 주요인이 과도한 선로사용료(연간 6,000억원대) 때문이라고 노조는 주장하지만, 이 선로사용료의 대부분이 코레일이 맡고 있는 선로 유지ㆍ보수 업무에 쓰인다. 자신들의 과다한 인력 때문에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은 비용을 가지고 도리어 '정부 탓'을 하는 노조의 궤변에 진보 진영은 무작정 박수치기에 바빴다. 원가를 알 수 없는 코레일 독점체제에선 정부 지원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되지 않아 경쟁체제의 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지만 공기업 부실을 무작정 방만 경영이나 노조 탓으로 돌리는 정부나 보수 진영을 두둔하기도 어렵다. 공기업엔 독점에 따른 방만 운영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공기업이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는 공공성과 직결돼 있다.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공기업이 전기 수도 가스 주택 등과 관련해 저렴한 공공요금으로 국민들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온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공기업들이 사실상 복지성 사업을 떠맡아왔던 것이다.
공기업 개혁에 경쟁과 효율성, 시장원리만 적용한다면, 이는 곧 공공요금 인상으로 귀결될 수 있다.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강한 채찍을 드는 것도 결국엔 공공요금 인상의 명분을 얻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적지 않다. 공공요금 인상은 복지예산 축소나 마찬가지로, 진보 진영이 주장해온 대로 '공공성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공기업 개혁을 응원하는 보수 진영 지지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막대한 공기업 부채를 줄이기 위해 알짜 자산 매각에 나선다면 공공성 훼손이나민영화 논란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수서발 KTX 법인의 경우에도 정부는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차기 정부가 철도부채 문제를 거론하며 매각 방침으로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요컨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은 개혁의 종착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자율 개혁만으로 현재의 부채나 운영 적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복지성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증세를 통한 정부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정부 입장에선 증세를 얘기하기가 공공요금 인상카드를 꺼내는 것 이상으로 부담스럽겠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처럼 불공평한 임금 문제에서부터 증세나 공공요금 인상 등 복잡한 문제가 뒤엉킨 사안을 보수ㆍ진보 진영간 힘의 논리로 해결할 수 있을까. 진영간 억지 싸움은 그만두고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 진지하게 논의해야할 시점 아닐까.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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