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전ㆍ현직 임직원들이 협력업체들로부터 납품 대가로 거액을 챙겨오다 적발됐다.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14명이 받은 액수가 무려 51억원에 달했다. 한 사람당 평균 4억원 가까이 챙긴 셈이다. 비리 규모도 큰 데다, 수법도 상상을 초월해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부사장부터 실무자까지 팀 전체가 연루됐고, 심지어 장래의 납품ㆍ청탁 대가까지 미리 계산해 빌려준 것처럼 공정증서를 만들어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친인척 계좌는 물론이고, 유흥업소 여직원 계좌까지 동원했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에도 임직원 3명이 원전비리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에게 10억여원의 로비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협력업체 납품 비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30년 넘도록 세계정상을 달려온 한국의 대표적 조선기업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충격적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높다. 세계를 호령하는 국내 조선업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이른바 '갑을(甲乙) 종속 관계'가 심하고, 협력업체간 경쟁도 치열하다. 본사가 공정별로 협력사를 선정해 등록하면 협력사는 본사의 감독 아래 기술인력을 투입해 작업하는 시스템이어서 공정 참여 및 납품을 둘러싼 비리가 만연할 소지가 많다. 실제 지난해 대우조선에서도 납품 비리가 있었고, 이번 조사 과정에서 2억 원을 받은 삼성중공업 직원도 적발됐다. 검찰은 갑의 횡포를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추가로 철저한 수사를 벌여 이러한 비리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일을 대오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실적이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비윤리적, 불법적 행위로 소비자와 사회의 신뢰를 잃으면 하루 아침에 흔들릴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일류 기업으로 남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윤리경영과 준법경영, 사회적 책임을 앞세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놀라운 창조경영으로 일궈낸 자랑스런 기업이 더 이상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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