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7일(현지시간) 회담에서는 동북아 현안인 일본의 과거사 문제도 관심사였다. 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미국 정부가 앞서 성명에서 밝힌 ‘실망감’ 이상의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된 건 성과로 볼 수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 미 정부의 분위기에 대해 “우리 정부 입장에 준하는 수준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된다”고 전했다. 그는 “미 정부 당국자들이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과거에 보기 힘들었을 만큼 아베 총리에 실망 이상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 의회, 학계 등에서는 이번 야스쿠니 사태 이후 그 동안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판단이 잘못이었다며, 인식을 바꾸는 분위기도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미 당국자들이 한국에 대해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하는 수위는 상대적으로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케리 장관이 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야스쿠니 사태는 물론 ‘일본’이란 말조차 꺼내지 않은 것은 양국 간 온도 차를 재확인시킨 것이란 평가다. 이날 윤 장관이 만난 로버트 메난데스 상원 외교위원장도 당초 한국 언론에 모두 발언을 하기로 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취소했다. 케리 장관을 포함, 미국 당국자들이 공개적인 일본 문제 언급을 꺼리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일본의 과거사 도발이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 이상으로 세계 3위 경제력을 지닌 일본과의 안보ㆍ경제협력이 중요하다. 비록 야스쿠니 참배는 못마땅하지만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매듭짓고, 미국을 대신해 대중국 억지력 확보에 나선 아베 정부를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수적 시각은 경계하지만, 이 때문에 일본과의 안보 문제까지 훼손시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윤 장관 방미에 이어 신설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야치 쇼타로 사무국장의 이달 방미 때 미국의 접대가 대체로 화기애애할 것으로 관측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이번 윤 장관의 방미로 미국의 기존 입장이 바뀌기 보다는 한국 입장을 배려해주는 시간이 연장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워싱턴 소식통은 예상했다.
윤 장관은 이번 방미 중 케리 장관 이외에 척 헤이글 국방장관,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버락 오바마 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도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제프리 베이더 전 NSC 아태담당 보좌관,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실장 등 동북아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인사들도 두루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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