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타결된 이란 핵 협상 이후 미국과 이란이 중동지역 현안에 대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핵 협상 타결을 고리로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나라 사이에 협력 무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중동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22일 열릴) 시리아 평화회담에서 이란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란이 회담에 참가하기는 어렵겠지만 한쪽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이번 평화회담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퇴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이 시리아의 우방인 이란의 역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란은 이번 회담의 공식 참가국이 아니다. 당초 이란의 참가를 반대했던 미국은 대신 '옵서버(참관국)' 자리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이란은 회담 참가를 요구하고 있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6일에도 "이란이 중동지역에서 긍정적 국가가 되려는데 관심이 있다면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할 조치들이 있다"며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 폭격을 중지하고 국제사회의 원조를 허용하도록 이란이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날 이란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와 교전 중인 이라크에 미국이 군사 원조를 하라고 제안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이라크 정부에 무기 판매 및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나라의 관계 개선 기류에 대해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놀랄만한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었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시설 건립을 추진해 온 이란을 공습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이 같은 해빙 무드는 이란 핵 타결이 기폭제로 작용하긴 했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측면이 크다. 올해 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앞두고 있는 미국으로선 역내 영향력이 큰 이란과의 협조가 필요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 행정부 관리를 인용, "미국 정부는 이란이 아프가니스탄부터 시리아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동지역 현안에 대한 영향력 있는 조정자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철수 이후 이란을 미국 중동 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핵 타결로 숨통이 트인 이란은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역내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견제하려고 한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케리 장관이 시리아 평화회담에서 이란의 역할을 강조한 지난 5일 두 시간 넘게 그를 만났다. 회담에 배석했던 사우드 알 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은 "아주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면서도 시리아 사태 및 이란과 관련한 주제에 대해선 함구했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에 따른 불편한 속내를 에둘러 드러낸 것이다. 이란의 한 분석가는 "이란이 미국을 활용해 오랜 라이벌인 사우디를 제압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빙 기류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NYT는 "중동 문제에 있어서 미국과 이란의 협력 관계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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