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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혹한과 파업, 그리고 투명인간의 복지

입력
2014.0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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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지 1주일이 지났다. 밝고 환한 새해덕담은 아직 한창이다. 한해의 시작이니 희망이 넘치는 건 당연하고 또 옳다. 다만 현실은 의외로 절망적이다. 절대다수의 평범한 삶이 표준적인 행복모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들의 2014년 출발선은 외롭고 힘들다.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도 매한가지다. 모두들 살아내기 바쁘다. 날 선 혹한이라 특히 한숨과 포기가 잦다. 정리해고의 40대 가장이 자녀 학비를 고민하며 폐가에서 질식사한 게 대표적이다. 없는 이에게 겨울은 더 날카롭고 추운 법이다.

그래서 복지가 있다. 적어도 생존권은 보장해주는 게 국가의 기본의무이자 사회안전망의 기본취지다. 아쉽게도 한국복지는 꽤 성글다. 국가 예산의 30%(GDP 대비)가 복지항목이건만 기대효과는 생각보다 낮다. 갈수록 늘어나는 빈곤함정의 불협화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루 3끼를 못 먹고, 난방을 켜지 못하며, 아파도 홀로 끙끙대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파탄인생은 불우이웃조차 아니다. 경계하며 멀리하려는 시대 세태의 확산이다. 도움 안 되는 불필요한 잉여인간이자 봐도 못 본 척의 투명인간일 뿐이다. 물론 이들을 아우르자는 복지담론은 많다. 제도개혁 논의도 일상적이다. 다만 정말로 이들을 껴안을 진정성이 있는지는 거듭 의심스럽다.

없는 이웃을 보듬는 것이야말로 정의요 공정이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가 말한 최소 수혜자의 최우선 배분원칙은 그 고민의 산물이다. 경쟁에서 이기면 다 갖는다는 슬로건은 무의미하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들과는 경쟁자체가 불공정하다. 능력이 떨어져 못 사는 것이니 더 힘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뚫지 못할 유리 천정에 낙담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독려는 자칫 착취구조의 악순환을 가중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다. 남는 건 양극화와 사회갈등의 심화다. 허술한 복지제도에서 살아내자면 스스로 더 챙겨두는 게 유일 방책인 까닭이다.

철도파업이 끝났다. 다행스럽다. 그런데 뒤끝이 찜찜하다.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혐의다. 노조ㆍ정부의 공박 논리는 감정ㆍ계산적이긴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민영화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함몰돼 어영부영 끝난 게 더 안쓰러운 이유다. 파업은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갈등 지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쪽과 경쟁성을 키우려는 쪽의 대결논리는 사실상 복지이슈로 갈무리된다. 복지가 탄탄했다면 이렇듯 첨예하게 부딪혔을까. 또 하나 안타까운 건 실종된 민심이다. 양측모두 '민심'을 내세웠지만, 보호막과 공권력의 이익다툼을 바라보는 무장해제의 민심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최저복지마저 위협당하는 소외된 민심으로선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저성장ㆍ고령화의 감축시대다. 파이확장이 힘들기에 한정된 재원을 둘러싼 쟁탈전은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결과는 중산층 축소다. 허리가 졸려진 채 위(부유층)와 아래(빈곤층)만 커지는 아령과 같은 인구구조의 고착이다. 1990~2010년 '중산층→빈곤층'의 인구만 50만이다. 앞으로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민심은 복지강화를 원한다. 오늘의 빈곤층에게서 약 80년 전 대공황의 열악한 살림살이가 떠오른다면 역사의 진보적 교훈은 허울에 불과해진다. 그렇다고 무턱 댄 복지 강화는 금물이다. 광범위한데다 되돌리기 힘들기에 정밀하고 치밀한 장기비전이 필수다.

복지설계의 대전제는 장기ㆍ지속성이다. 감축성장에도 불구, 지속적인 복지시스템을 만들자면 계층 및 당파초월적인 상생타협이 먼저다. 물론 어렵다. 국회를 바라보면 불가능의 확신만 거듭될 뿐이다. 그렇다고 더 늦춰선 안 된다. 지체할수록 값비싼 대가와 희생이 따른다. 반면교사는 많다. '무연사회'의 불명예 딱지가 붙은 일본에선 불행하고 처절한 고립된 죽음이 끝없다. 1997년 "주먹밥이 먹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굶어 죽은 사건을 비롯해 최근엔 31세 여성이 아사상태로 발견됐다. 죽기 전 친척에게 "돈이 없다"고 했지만 그녀를 위한 동아줄은 끝내 없었다. 복지 실종이다. 일본은 1973년 복지원년을 선포했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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