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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둥 살 둥 해야 한다" 눈감던 날까지 원고지를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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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둥 살 둥 해야 한다" 눈감던 날까지 원고지를 채우다

입력
2014.01.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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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 글피쯤이면 아흔이 될 나이에 마음만은 어김 없이 나무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소슬하되 다소곳하고, 우람하되 고즈넉하게 노년의 삶을 다듬고 싶다."

김열규 전 서강대 교수에게 삶은 글쓰기였다. 손에 처음 펜을 쥔 이래 일흔 해 넘도록 글을 쓰며 끊임 없이 빈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숨을 거두기 전날도 고인은 항암 주사를 맞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 뒤에야 침소에 누웠다.

지난해 10월 향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학 분야의 거장 김열규 교수가 남긴 마지막 글을 모은 에세이 (휴머니스트)가 책으로 나왔다. 턱 밑까지 차오른 죽음의 위협을 모른 체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선생의 글에는 커다란 정자나무 같은 강인함이 서려 있다. '죽음을 마지막이 아니라고 굳게 믿은 옛사람들의 생각'을 따르는 까닭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집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흔을 미리 짚어 책 제목으로 삼았을 만큼 건강했다. 초여름엔 첫 탈고를 마칠 정도였다고 한다. '여분의 삶'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값진 하루하루를 보냈다. 고인은 "여생이란 말의 '여'는 여분(餘分)의 '여'와 같아서 영 마땅치가 않다"면서 "쓰다 말고 먹다 남은 것이 여분인데 그 '여'가 곱게 느껴질 턱이 없다. 그래서 더욱 나의 여생이 여분과는 인연이 없기를 바란다"고 썼다.

저자는 마지막이 될 것임을 직감한 이 책에, 국문학과 민속학을 아우르며 썼던 70여권의 책들과 달리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상과 사유를 담았다. 만성병이 된 고독에 시달리며 전전반측하는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일상과 약골에 책벌레였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산과 바다에 대한 예찬이 교차한다. 책 곳곳에서 삶을 대하는 성실함과 진지함, 애정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죽을 둥 살 둥 해야 한다. 죽음이 마지막 결의이고 도전이게 해야 한다. 머지않아 구순을 내다보는 나로서는 더한층 그래야 할 것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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