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3] 제시문 [아]와 [자]는 사회적 ‘변화’와 관련된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아]와 [자]에 나타난 불평등적 상황을 야기한 법적 근거의 차이와 그 의미를 논하고, 그 상황이 해소되는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시오. (700±100자)
[제시문 아]
“다음은 회덕 유생 양현기의 상소입니다. ‘서얼을 허통(許通)하신다는 발표가 있은 뒤로 이곳 회덕현 일원에선 여러 처첩 소생간의,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나이다. 전하께서는 서얼을 차별하는 것이 중국에도 없는 악법이라 하시나 그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사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거공재(同居共財)하는 중국과 달리 혼인을 하면 얼마의 가산(家産)을 떼주어 살림을 내보내는 분가별산(分家別産)의 상속례를 좇고 있사옵니다. 분가를 시킴에 적장자(嫡長子)를 우대한다는 원칙이 뚜렷한 지금도 말이 많아 분란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또 종가에 제향을 받들 가산도 항용 모자라거늘 하물며 이제 적자와 서자의 분별(嫡庶之分)을 없이하시면…’”
“우불(吁咈: 그렇지 않다)!”
정조(正祖)가 다시 이인몽의 말을 가로막으며 대답했다. 그 음성엔 노기가 섞여있어 대번에 좌중을 긴장시켰다. 도승지 민태혁을 비롯하여 좌승지 이서구, 우승지 이익운, 좌부승지 정상우, 우부승지 서유문 등 임금의 앞에 나란히 책상을 놓고 졸다시피 하던 시신들의 등이 일제히 꼿꼿하게 펴졌다. 모두들 하루 종일 계속된 집무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오늘 상소는 거의 다 정조의 교지를 반대하는 것들뿐이니 오죽 일할 맛이 없으랴. 올해 정월, 정조가 재차 천명한 일련의 개혁조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갖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방안은 서자들의 과거 응시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던 경국대전 예전(禮典) 제과조(諸科條)를 개정하여 유능한 서얼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날 이후 지금까지 조정의 노론들뿐만 아니라 재야의 사림들로부터 빗발치는 상소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시문 자]
미국 연방대법원은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Plessy v. Ferguson) 판결에서 수정헌법 제14조는 법 앞에서 백인과 흑인, 두 인종의 절대적 평등을 보장한 것일 뿐, 피부색에 근거한 구분 자체를 폐지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분리되지만 평등한’(separate but equal) 기회를 제공하면 합헌이라는 논리를 들어, 짐 크로우 법률에 의한 흑백 차별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분리되지만 평등한’이라는 원칙은 그 후 6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 남부의 모든 학교와 도서관, 버스에서 흑백 강제 분리는 당당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미국 유색인종 지위향상협의회(NAACP)라는 대표적인 흑인 인권단체가 짐 크로우 법률과 관련된 구체적인 재판들에서 흑인에게 제공되는 시설이 백인에게 제공되는 시설에 비해 현저히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입증하여 실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위 원칙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NAACP 내의 법률구조 팀을 이끌던 서굿 마셜은 이러한 개별적인 대응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분리되지만 평등한’이라는 원칙 자체를 깨뜨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직시하여 준비에 착수했다.
올리버 브라운은 린다라는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평범하지만 신앙심 깊은 흑인 용접공이었다. 린다는 집에서 7블록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6블록을 걸어가서 스쿨버스를 타고 1.6㎞ 떨어진 곳에 있는 흑인들만의 먼로 초등학교로 통학을 해야 했다. 1951년 서굿 마셜이 이끄는 NAACP는 캔자스 주의 수도인 토피카에 거주하는 흑인들 중 브라운처럼 집에서 가까운 백인 학교에 입학신청이 거절된 사람들을 모아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제1심 법원은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을 원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법원은 토피카 교육위원회가 흑인 학생들에게 제공한 시설이나 교사의 수준이 동등하므로 실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1952년 가을,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첫 번째 구술변론에서 원고를 대변한 NAACP의 서굿 마셜은 아무리 좋은 시설, 좋은 교사, 좋은 교과 과정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분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이며 흑인들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흑인 아동들의 교육에 치명적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구술변론 직후 연방대법원 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자, 연방대법원은 판결 선고를 미루기로 결정한다. 1953년 12월, 연방대법원장 얼 워렌은 이 사건의 구술변론을 다시 열었다. 6일이나 계속된 구술변론 후, 워렌 대법원장을 비롯한 9명의 대법관들은 만장일치로 서굿 마셜의 주장을 받아들여, ‘분리’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유색인종 아동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분리되지만 평등한’이란 원칙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게 된다.
[예시답안]
제시문 (아)와 (자)에는 불평등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법이 나타난다. 제시문 (아)에서는 조선의 상속례를 통해 서얼을 차별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관리들은 상속례가 서얼을 차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얼에 대한 차별이 과거부터 이어졌기 때문에 관습으로 여기려는 모습도 나타난다.
제시문 (자)에서는 형식적으로 평등해 보이는 법으로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정당화 한다. 형식적으로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하면 합법이라는 논리는 법의 해석과 적용이 하기 나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색을 배경으로 한 보이지 않는 차별 역시 정당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두 제시문 모두 부당한 차별에서 벗어나는 사회적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제시문 (아)에서는 왕이 절대적인 권력으로 임의로 법을 수정하여 차별을 해소한다. 그러나 차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관리들을 설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법의 제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에 대한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제시문 (자)에서는 부당한 차별법의 논리의 허점을 비판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분리의 행위 자체만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손상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법을 폐지한다. 김정한ㆍ서울 광남고 3학년
[문제 분석과 답안 총평]
이번 편은 홍익대 마지막 문제인 3번 문제이다. 각 문항별 지문과 배점이 달라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꽤 까다로웠을 것이다. 지문에는 각 불평등적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불평등적 차별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법률적 근거가 한몫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불평등한 차별적 상황을 유발한 법률적 근거가 무엇이며, 그것의 해결 과정이 어떻게 다른 차이를 보이는가를 읽어내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먼저 (아)에서는 적자와 서자의 차별과 이를 철폐하려는 정조의 개혁 시도의 법과 관련 변화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 수험생의 답안에서도 역시 이러한 차별적 상황을 분별해서 잘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차별의 법적 근거가 ‘조선의 상속례’라고 한 것은 잘못된 답안이다. 정확한 법적 근거는 ‘적장자 우대 원칙’으로 이에 따라 불평등한 상황이 조성된다. 그리고 이는 서자에게 기회의 평등은커녕 모든 제도에 대해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제도에 응시할 수 없는 점이다.
흑인(또는 유색인종)과 백인의 차별을 용인한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과 이를 시정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과 관련 내용을 다룬 (자)를 제시하고 있다. ‘분리되지만 평등한’ 원칙은 피부색의 구분에 근거한 법 앞에서의 절대적이고 형식적 평등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 그 이외의 객관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질적 평등에선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공정하지 않지만 객관적 환경에서 비롯된 기회의 평등은 이루어 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답안은 이런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불평등적 상황의 해소 과정은 역시나 명확하게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에서는 위에서 아래로의 해결방식을 볼 수 있다. 왕이 직접 나서서 법을 마련해 서자들의 불평등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반면 (자)에서는 아래에서 위로의 해결방식을 볼 수 있다. 차별을 당하는 흑인 당사자들이 수평적 연대관계를 맺고 집단소송을 통해 해결을 하려 하고 있다. 이런 ‘수직적 하향 명령 구조’로 불평등적 상황을 해결하려는 과정과 ‘수평적 연대를 통한 상향식 해결 구조’로 불평등적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이 대비되어 드러나면 괜찮은 답안이라 할 수 있다. 답안에는 (아)에서 왕이 명령을 통해 해결을 한다는 내용은 나와 있지만 (자)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을 한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아 다소 아쉬운 답안이라 할 수 있다. 김경석ㆍ종로학원 논술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