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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월 7일] 호세 아저씨가 쿠바를 떠났다

입력
2014.0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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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아저씨가 미국 마이애미로 이민을 가버렸다. 몇 년 전 보내놓았던 둘째 아들이 사는 플로리다에 새로 둥지를 틀기로 한 것이다. 이제 할아버지의 재력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을 어린 손녀와 앞으로 태어날 손자는 완벽한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축하할 일이라 해야겠는데, 왠지 가보지 않은 아저씨의 집 창문이 바다 건너 아바나를 향해 크게 나있을 것만 같다.

2005년 이메일과 전화로 아저씨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듬해 자그마한 체구에 눌러 쓴 베레모 아래로 짓궂게 눈을 빛내는 쿠바인을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런데 좀 당황스럽다. 정부장학생으로 김일성 대학에서 유학한 한인 3세라는데, 그의 외모와 행동에서 도통 된장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파스타에 소금을 잔뜩 얹어 먹는 모양새가 조금 촌스러운듯한 그저 딱 외국인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눈치 빠른 그가 끝내 한마디 던진다. "뚱뚱하고 못생겨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중년 아줌마를 상상했다."

어느 도시나 입구에서 중심지까지 빨래가 널려있는 것으로 생활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 숨 한번에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이 즐비하다. 경험한 호텔만으로 짐작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고장 나 벌레가 우글거리는 냉장고는 그렇다 치고 배수구에 물이 넘쳐도 고치겠다 나서는 이 하나 없으니 내부는 더 가관일터.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었고 도마뱀도 심심찮게 나온다. 물론 가격에 따라 편차가 매우 심해 비싼 호텔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객실은 넓게 탁 트였고 정성스레 접은 수건백조가 매일 침대에 오른다. 운동장만한 수영장 옆에 자리 차지하고 누워 풍성한 열대과일을 양껏 먹을 수도 있다. 아무 때고 바다에 뛰어들어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다. 그리고 매일 저녁 파티에 취하면 환각 속 리듬에 흔들리는 시계추에 녹이 나는 줄도 모르고 나사를 풀어헤치니 영화와 노랫말이 그토록 사랑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노란 깃털 장식을 목에 두른 스크린 속 쇼걸 로라'를 확인할 요량으로 코파 카바나를 찾아간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2011, 2012년 연이어 쿠바를 만났다. 세상에 널린 피부색을 전부 모아놓은 듯한 올드 아바나 거리는 한집 건너 하나가 미술관이고 박물관이다. 공원과 식당은 다른 목소리로 비슷하게 노래하는 뮤지션들 차지고 헤밍웨이가 친구들과 앉아 모히또를 마셨다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벽에는 줄 하나 얹을 틈도 없이 전세계 유명인사들의 흔적이 빼곡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 아홉, 아저씨는 내가 밉다고 했다. 고급인력을 헐값에, 그것도 지독히 부려먹기로는 최고라니 그 정도는 치러야 할 값일 터. 그런데 가끔 "잘 지내냐"며, "궁금하다"고 예쁘게 찍힌 사진 한 장 딸려 소식을 물어온다.

영화담당 공무원에 대학교수였던 아저씨는 쿠바를 찾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코디네이터로 유명했다. 연구원과 야구단 통역자로도 자주 한국을 찾았던 그는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해 아바나 부촌의 어느 깔끔한 유럽풍 빌라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어눌하지만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는 그의 한국말은 매우 특별했다. 우리 속 깊숙이 들어와 외국인이라는 것을 잊게 하기 일쑤여서 "나는 쿠바 사람이에요"라는 말에 어리둥절해 보기도 수 차례. 아, 맞다. 잘 꺼내지 않는 공무원용과 일반용 두 개를 들고 다니던 아저씨의 여권에는 선명하게 CUBANA라 찍혀 있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국민들이 살 수 있게 책임진다"며 아파도 걱정 없는 고국, 그의 쿠바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돈이 제일 좋아요." 화폐가 전시된 미술관을 나서며 그가 했던 말이다. 할아버지가 된 쿠바의 지식인에게 절실했던 무엇, 분명 진심이었을 게다. 매일 몇 시간씩 현대미술관에 걸린 그림 앞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던 아저씨는 아들과 어린 손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마이라를 데리고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날아갔다.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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