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꿈꾼다.
사상 첫 동계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여자 컬링 대표팀은 이를 꽉 깨물었다. 경기도청 컬링 팀으로 구성된 여자 컬링 대표팀은 4년 마다 돌아오는 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 누구보다 힘든 길을 돌아와야 했다. 국내 최초로 해외(중국) 유학을 다녀온 스킵(주장) 김지선(27)을 필두로 신미성(36) 이슬비(26) 김은지(24) 엄민지(23)로 구성된 컬링 대표팀은 최근 2년 사이 기량이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상 첫 메달 획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장비 재활용해야 했던 여자 컬링의 비애
흔히 '빙판 위의 체스'로 불리는 컬링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훈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장비도 많지 않아 한 때 국제 대회에 나가서 다른 나라 선수들이 쓰다 버린 브러시 헤드를 주워 빨아야 하기도 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잠시 방황도 했지만 2009년 재결성된 경기도청 팀에서 3년 간 한솥밥을 먹으며 맹훈련, 마침내 지난해 3월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한 팀 당 8개의 스톤을 번갈아 투구하는 컬링은 4.8m 하우스 안에 얼마나 많은 스톤이 중심에 더 가까이 있는지로 점수를 매긴다. 한국은 1994년 뒤늦게 연맹을 창설했다. 역사가 이제 겨우 20년 밖에 되지 못해 변방으로 불리고 있지만 2012년 여자 대표팀이 세계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쓰면서 당당히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여자 컬링의 세계랭킹은 올림픽 출전국 가운데 가장 낮은 10위다. 여전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약 팀이지만 반대로 상대의 방심을 파고든다면 의외의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전지 훈련으로 자신감 얻은 대표팀
여자 컬링 대표팀은 대한컬링경기연맹의 지원으로 지난해 9월부터 두 달 동안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하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지난해 9월 중국 오픈에서는 강호 캐나다를 꺾고 우승했고,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3 아시아ㆍ태평양 컬링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12월 이탈리아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은메달을 거머쥐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었다. 내친 김에 올림픽 시상대까지 노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에서 쌓은 큰 무대 경험은 다음 평창올림픽에서는 메달 전략 종목으로 도약할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스코틀랜드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떠난 여자 컬링 대표팀은 소치 동계올림픽을 사흘 앞둔 다음달 5일 소치 현지에 입성한다는 계획이다. 컬링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는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제컬링연맹(WCF) 남자부 세계랭킹 2위, 여자부 세계랭킹 3위에 올라있는 강호다. 국제컬링연맹 본부도 스코틀랜드 퍼스에 있다. 그만큼 좋은 경기장 시설과 빼어난 기량의 팀들이 많아 올림픽을 앞두고 연습경기로 기량을 끌어올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스코틀랜드는 얼음 상태가 좋고 훌륭한 연습 상대가 많은 곳이다. 최상의 여건으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정영섭 컬링대표팀 감독은 "초반 전략만 잘 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마지막 담금질에 나설 것이다"고 설명했다.
넘을 수 없는 벽 캐나다, 이제 경쟁 상대로
올림픽에서 대표팀은 리그전 방식으로 예선(9경기)을 치르게 되는데, 4위 안에 들 경우 토너먼트 방식의 준결승에 진출한다. 한국은 다음달 11일 일본(세계랭킹 9위)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7일간 9개 팀과 풀리그를 치른다. 첫 상대인 일본이 비교적 약한 상대라 기선을 잘 제압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을 꺾고 이어지는 스위스(4위)ㆍ미국(7위) 등 1~2 팀만 더 제압한다면 4강 진출 가능성이 더 넓어진다.
컬링 종목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가는 역시나 '종주국' 캐나다(2위)다. 대표팀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컬링 최강국으로 꼽히는 캐나다 선수들이 쓰다 버린 장비를 쓸 정도로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오픈에서 캐나다를 꺾고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17일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캐나다와 붙는 대진운도 나쁘지 않다. 분위기가 좌우하는 컬링의 특성상 예선 초반에 좋은 기세만 탄다면 해볼 만 하다는 판단이다.
주장 김지선은 "그 동안의 설움은 잊은 지 오래다. 새로운 컬링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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