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코리아] 동양그룹 사태 이후 최근 금융계열사를 통한 기업어음의 불완전판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에서 운용 중인 국민검사청구제도와 최근 발의된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대응책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금융 소비자들을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해선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현행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에서 금융시장 전체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 방안까지 함께 고민해 본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겸 KAIST 겸직 교수
국민검사청구제도의 너무 엄격한 요건 요구
올 5월에 도입된 국민검사청구제도는 200명 이상의 금융 관련 피해자가 공동으로 금융기관의 위법사항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의 실체가 단순한 ‘검사촉구’임에도 너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이처럼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일까? 더 놀라운 점은 국민감사를 청구한 피해자들을 실효성 있게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 절차나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제도의 존재 의미 자체에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현행 국민검사청구제도가 행정편의적인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감독 당국의 정체성 재정립 필요
이 같은 국민검사청구제도를 보면서, 이제는 금융감독 기관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금융감독기관은 규제기관이기 이전에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공행정 서비스의 제공자이고, 금융소비자로부터 이러한 업무를 위탁받은 대리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의 위법사항 검사뿐 아니라, 금융피해자의 실효성 있는 구제를 위한 구체적 방안 제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실효성 있는 개인 피해자 구제책 마련해야
불완전판매의 특성은 피해자가 주로 노년층이나 주부 등 일반 개인이라는 점이다. 이는 현행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모든 리스크를 개인투자자가 궁극적으로 떠안는 구조에서 기인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타파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개인투자자의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는 현행 금융시장과 시스템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사법당국의 새로운 법리 접근 필요성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사법당국도 좀 더 금융소비자 친화적인 법리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키코상품의 불완전판매에 대해 법원은 보수적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런 사법부의 판단이 형식적인 법리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금융시장의 현실적 요구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복잡하고 전문적이며 급박하게 돌아가는 금융상품시장 시스템하에서 무기력한 개인투자자들에게 그처럼 냉정한 투자판단을 강요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시스템 구축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금융당국은 공공행정 서비스의 제공자 및 금융소비자의 대리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국민검사청구제도의 운영도 피해구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금융상품 설명 의무를 구체적으로 매뉴얼화하고, 소비자 보고서를 통해 개별 금융상품에 정확한 등급을 제공해 리스크에 대한 정보제공 창구를 상설화함으로써 전문성이 미흡한 개인 금융소비자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차제에 사법당국에 대해서도, 금융시장의 현실에 기반한 금융소비자 친화적인 법리해석을 기대해 본다.
금융소비자 보호법안의 주요 내용
최근 사태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법안이 활발하게 발의되고 있다. 특히,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폐해를 없애기 위해 금융상품을 판매한 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는 부분이 신선하게 와 닿는다. 이 법안은 그 밖에도 금융기관 보관자료의 제공의무, 분쟁 조정 시 소송금지, 과도한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매출액의 3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대출모집인 및 법인 등록제를 통해 은행 등의 위탁 금융회사가 직접 관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금융위 산하에 금융소비자정책위원회를 설치해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의견을 조율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그간 논의되어 온 소비자 보호방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금융기관에 완전판매에 대한 입증 책임을 부담시킨 규정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부담이 너무 클 수 있으므로, 적용범위를 조정할 필요는 있다. 어떤 경우에도 불완전판매에 대한 세밀한 심사 기준이 요청되므로, 설명의무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설정되어야 한다. 설명의무 등과 관련한 업무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도 참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호법안과 감독기관의 역할
녹취록 등과 같은 금융회사의 자료는 강제적으로 보관시켜 금융소비자가 요청할 때 즉시 제공하게 해야 하며, 위반 시에는 엄중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동안 금융분쟁 조정 때 문제가 되어온 소송금지의 도입은 바람직하나, 금융분쟁 조정결정에 대해선 적어도 금융기관만이라도 이에 구속되도록 하는 ‘편면적 기속제도’를 검토했으면 한다. 또한 징벌적 과징금보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볼만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일반예방 및 피해자 구제에 좀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출모집인 등록제도 도입도 때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원화된 금융감독기관, 즉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의 경우, 둘을 조정·통합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그간 주장되어 왔는데, 위원회가 이를 담당한다고 하니 한번 지켜볼 일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논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선된 제도의 실효성 있는 운영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본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를 기대해 본다. 금융소비자 보호기구의 인적 구성도 밑바닥에서부터 금융소비자와 대면한 경험을 가진 인력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영입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업무에 불성실한 금융감독 임직원을 금융소비자가 직접 소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 차제에 좀더 혁신적인 제도 도입을 통해 금융소비자의 눈높이에서 금융소비자의 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금융관리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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