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가 심상치 않다.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의 꺾이지 않는 흥행세가 1,000만 고지를 향하고 있다. 4일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은 739만5,03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였다. 6일 800만 관객을 넘어 이번 주말 900만 관객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충무로에선 새로운 1,000만 영화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다.
'변호인'의 흥행 질주는 충무로의 몇몇 속설까지 깨고 있다. 충무로 지각변동의 상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변호인'이 국내 극장가에 세우고 있는 새로운 이정표들을 살펴봤다.
'멀티캐스팅해야 대박' 속설 깨
최근 충무로의 흥행 키워드는 '멀티캐스팅'이다. 유명 배우들을 되도록 많이 모아 다양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 하고 있다. '도둑들'이 대표적이다.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에다 홍콩스타 런다화까지 모았다.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이종석 등이 출연한 '관상'도 멀티캐스팅을 무기로 삼았다. 이야기의 힘이 떨어질 참이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대 1,000만 영화 중 단독 주연 작품이 없다는 점이 멀티캐스팅 전략의 위력을 보여준다.
'변호인'은 이런 경향에 역행한다. 돈만 쫓던 세무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송우석(송강호)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달수, 김영애, 곽도원 등 중견 배우들이 등장하나 송강호에 무게중심이 많이 간 '송강호 영화'다.
'변호인'은 현대사의 유명 인물을 소재로 대형 흥행에 성공한 첫 한국 영화다. 국내에선 현대사를 영욕으로 살다간 정치인일수록 스크린에 등장시키기 쉽지 않다. 유족의 반발과 정치 집단의 견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대형 흥행작들은 보통 500만 관객을 넘어서야 재관람률이 높아지는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변호인'은 개봉 초기부터 다시 보는 관객이 많았던 듯하다"고 말했다.
뉴를 충무로 최강자로 등극시켜
'변호인'이 현재의 흥행세를 유지하면 이달 하순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이 1,000만 고지에 오르면 2004년 '실미도'가 첫 1,000만 관객을 기록한 뒤 열번째로(할리우드 영화 '아바타' 포함) 1,000만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변호인'의 1,000만 영화 등극은 영화산업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영화산업은 2000년대 중반 호황을 거쳐 2000년대 후반 혹독한 불황을 겪었다. 2010년대 들어 '도둑들'(2012)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7번방의 선물'(2013)이 연이어 1,000만 관객을 넘어 충무로의 산업적 부활을 알렸다. '변호인'의 1,000만 관객 달성은 2년 연속 1,000만 영화 2편 첫 배출(개봉연도 기준)이라는 진기록으로 이어진다.
'변호인'은 충무로 역학관계의 급변을 상징하기도 한다. '변호인'의 투자배급사 뉴(NEW)는 '변호인'의 흥행을 발판 삼아 '충무로 최고 실력자' CJ E&M 영화사업부문을 제치고 지난해 한국영화 배급시장 1위에 올랐다. 충무로는 2000년대 초반 CJ E&M과 시네마서비스 2강 체제, 2000년대 중반 CJ E&M과 쇼박스의 2강 체제를 거쳐 CJ E&M이 2000년대 후반부터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한 영화사의 대표는 "지난해 충무로 최고 뉴스를 꼽는다면 뉴의 배급시장 1위"라며 "한국영화 시장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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