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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석의 메디토리/1월 6일] 다문화가정에 대한 의학적 담론

입력
2014.0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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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인 '귤화위지'(橘化爲枳)는 기후와 풍토가 달라지면 귤도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가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로 질환의 발생에는 유전, 환경 그리고 생활습관 요인이 작용하는데, 주로 생태계 환경과 식이습관을 비롯한 생활형태가 영향을 미친다. 암의 발생에 있어서도 유전적 원인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 유방암이나 대장암,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낮은데, 서구로 이주한 한국인 1.5 혹은 2세대들은 식습관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서구인과 비슷한 발병률을 가지게 된다. 한국인의 건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달라진 환경과 문화적 생태계의 영향을 받아 질병 감수성이 바뀌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생활환경도 서구화되면서 서구형 암의 발생이 증가하는 등 질병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환경 혹은 생활습관 요인으로 발생하는 질병은 원인이 다양하고 발생까지의 기간이 길며 시점이 불분명하여 그 요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가 힘들다.

다문화가정은 한민족과 다른 민족 또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된 가정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2000년대 들어 타민족과의 결혼 빈도가 높아지고 혼혈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정서를 해소하기 위한 제정된 새로운 용어이다. 다문화가정은 2013년 현재 75만명 정도이며 2020년에는 1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결혼이주여성은 전에는 중국계 여성이 다수였으나 최근에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다문화가정의 자녀 수는 19만명을 넘어서서, 5년 전인 2008년의 5만여 명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중 재학 중인 자녀는 5만여 명이고 아직은 초등학생이 70% 정도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고등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져 2020년엔 국내 청소년의 20%가 다문화가정 출신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언어 문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은 다문화가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서 및 문화적 융화가 필요하겠지만, 이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시급한 문제이다. 대부분 가임기인 결혼이주여성들의 건강은 자녀출산 및 양육으로 연결돼 우리나라 인구의 양적 질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자라서 성인이 되면 국방, 납세 등 대한민국 국민의 역할을 할 미래의 인적 자원이다. 따라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건강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다문화가정의 구성원들은 개인이 가진 유전적 특성과 생활환경의 영향과 함께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건강과 질병은 이러한 모든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건강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정혜원 이화의대 교수가 지난 8년간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시행한 질병관리본부의 국내이주자 코호트연구에 의하면, 결혼이주여성들은 건강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혈 유병률과 기생충 감염률, B형간염 위험률이 높으며, 간 질환, 고지혈증의 위험도가 높다고 한다. 빈혈은 동남아시아 출신들에게 많은데, 임신부의 빈혈은 모성 사망률을 높이고 저체중아, 미숙아, 영아사망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위험도가 높고, 식생활에 있어서도 같은 거주지역의 한국인 여성들보다 영양소 평균 섭취량이 낮았다. 다행히도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영양 상태는 점차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주여성의 나이가 증가하고 자녀의 성장, 남편의 고령화로 인해 다문화가정의 건강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별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의료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단회성 검진이나 진료 차원이 많다. 앞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건강실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이들이 처한 의학적 상황에 대한 세심한 배려,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와 적절한 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심봉석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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