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말인 4일 대낮 고속도로에서 20대 3명이 "뜯긴 돈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납치한 40대 남성을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들은 차를 몰고 30분쯤 달아나다 뒤쫓아온 경찰에 붙잡혔으나 피해자는 이미 숨진 뒤였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5일 채모(40)씨를 납치, 살해한 혐의(강도살인 등)로 이모(26)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혐의(감금 교사)로 채씨의 전 부인 이모(41)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4일 오후 2시50분쯤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인근 커피숍으로 채씨를 불러낸 뒤 준비한 승용차에 태워 납치했다. 이들은 채씨가 모 대학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영화사 미디어감독 오디션에 응했다 떨어진 적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채씨에게 "예술영화감독 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며 유인했다.
이들은 채씨의 양손을 케이블 타이(플라스틱 끈)로 묶은 뒤 미리 물색해 둔 경북 안동의 한 폐가로 향하다 오후 3시37분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이 과정에서 채씨가 결박을 풀고 차에서 뛰어내려 "살려달라"고 외쳤고, 범인들은 채씨를 차에 밀어 넣고 흉기로 허벅지를 5차례 찌른 뒤 차를 몰아 달아났다. 이를 목격한 시민들은 "남자 여러 명이 남자 1명을 태우고 도망갔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씨 등은 강릉 방향을 달아나다 30분 만인 오후 4시5분쯤 중앙고속도로 대구 방면 남원주요금소 부근에서 공포탄을 쏘며 추격한 강원경찰청 소속 고속도로순찰대에 의해 검거됐다. 채씨는 다시 양손이 결박돼 뒷좌석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지난해 9월 채씨의 전 부인 이씨로부터 "혼수 비용과 결혼 이후 이런저런 명목으로 뜯긴 1억원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씨는 "전 남편에게 준 돈 2,000만원을 받아달라고 했을 뿐 납치나 폭행을 부탁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지인의 소개로 범인들은 알게 됐고, 범인들은 유흥업소에서 함께 일한 사이로 전해졌다.
채씨와 이씨는 2010년 10월 결혼식을 한 뒤 4개월 가량 살다 헤어졌으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채씨는 서울 강남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었고, 피아노를 전공한 이씨는 서울 모 음악단 음향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전 부인 이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교사 동기 등을 추궁하고 있다.
용인=이범구기자 eb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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