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40대男부끄러운 인터넷 일탈 "다 지워달라" 유언 남겨"잊혀질 권리 존중 필요… 말끔히 떠나는게 웰다잉"건강한 사람들도 미리 계약본인이 직접 계약하려면 아이디·주민번호 등 필요비용은 50만~100만원선
"여보, 내가 죽으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지워 주오." 지난해 9월 악성 림프종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김모(43)씨는 아내에게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김씨의 고백이 이어졌다. 자신이 해외 포르노 동영상을 모아놓은 웹하드 유료회원이었고, '소라넷' 같은 성매매 알선 커뮤니티의 우수회원이었노라고.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이런 음란한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녔다고 털어놓았다.
아내(41)는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컴퓨터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남편이 이상해 인터넷 접속기록을 봤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이 아등바등 돈을 버느라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이 오로지 인터넷 공간을 쉴 곳 삼았다고 이해했다. 늦게라도 부끄러운 흔적을 지우려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했다. 남편은 "아들 딸이 이런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될까 두려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는 며칠 뒤 디지털 흔적을 지워주는 업체에 의뢰해 남편의 디지털 장례식을 치렀고, 남편은 곧 눈을 감았다.
삶의 마감을 준비하는 이들의 인터넷 흔적을 지우는 '디지털 상조서비스'가 국내에도 등장했다. 해외에서는 3, 4년 전부터 디지털 장례 서비스 사이트인 '라이프 인슈어드(lifeensured.com)'나 고인의 인터넷 사용정보를 유족에게 전달해 주는 '레거시 로커(legacylocker.com)' 등 업체들이 관련 서비스를 해왔다.
악성 댓글이나 성관계 동영상 등 인터넷 과거를 청산해주는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는 두 달 전 디지털 장례 대행을 시작했다. 김호진 대표는 "잘못하면 신상이 전부 공개되는 세상이라 무심코 인터넷에 남긴 찜찜한 과거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그간 20여명과 상담했고, 이 중 3명과 계약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미리 계약하는 사례도 있다. 김모(46ㆍ여ㆍ유통업)씨는 며칠 전 사후 디지털 장례 계약을 했다. 인터넷에서 수 년 전 직원모집 공고 때 공개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아직 검색되는 것을 확인한 직후였다. 김씨는 "디지털 흔적들이 지금 당장 피해를 주진 않겠지만 내가 죽은 뒤 가족에게 폐를 끼칠 지 모른다"며 "나만의 웰 다잉(Well dying) 준비"라고 말했다.
본인이 직접 계약하면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집주소 등 개인정보만 알려주면 된다. 가족이 대신할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진단서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비용은 지울 정보의 종류와 분량에 따라 50만~100만원선. 업체는 계약자가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지우고 탈퇴한 뒤 혹시라도 남은 '찌꺼기'는 자체 개발한 검색 프로그램으로 찾아 삭제한다.
윤영민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잊혀질 권리'는 웰 다잉 측면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들어왔다"며 "개인이 일일이 디지털 흔적을 찾아 지우기는 어려운 만큼 전문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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