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역 화장실에서 땀이라도 씻고 전철 타야지."
저녁 8시. 조선족 리모 씨는 공사현장 일을 마치고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땀냄새에 눈살을 찌푸릴 것 같아서다. 하지만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물집 터진 발가락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고시원 잠자리에 들면 습관처럼 고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와 어린 딸의 목소리가 그의 자장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새벽 4시. 다시 인력시장에 나갈 시간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체류 한국계 조선족은 44만7,877명이다. 그들 절반 이상이 단순노무 종사자다. 서울 구로구 새벽 인력시장은 리 씨와 다를 바 없는 조선족 동포 수천 명이 매일 장사진을 이룬다.
"벌이가 좋아서" "일당제라 월급 떼일 일 없어서" "달리 배운 게 없어서" 그들은 인력시장에 나온다고 했다. 새해 소망을 물었다. "딸의 대학 등록금" "가족이 함께 살 집" "온 가족이 함께 일할 식당 하나"…. 그들의 소망은 보통 가장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현실이 터무니 없이 불리해서, 그 익숙하고 가난한 꿈들이 조금은 슬프게 들렸다.
지난해 7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상수도관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인부 7명 중 3명이 조선족이었다. 그 달 30일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남단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3명도 모두 조선족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들의 노동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건설 현장 인부의 60~70%가 조선족으로 채워진 지도 꽤 됐다. 그들은 대개 가장 험한 일을 맡지만, 다쳐도 산재인정을 못 받고 건강보험 혜택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다치면 끝이어서, 그들의 하루는 늘 벼랑 끝을 맴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조선족 방문취업 및 자진출국 길을 터준 이래 한국 정부의 조선족 정책은 사실상 무관심과 배제 원칙으로 일관해왔다. 비자발급 등 현실적인 차별도 있다. 소수민족 통합정책을 중시하는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서, 가난한 동포들의 국내 노동시장 교란을 우려해서다. 사회의 시선 역시 여전히 차갑고, 보이지 않는 차별도 아직은 엄연하다.
한국 사회가 보다 건강해지려면 먼저 그들의 삶의 조건이 나아져야 한다. 그들의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이루어야 할 꿈이기도 할 것이다. 재한동포연합총회 김숙자 회장은 "새해에는 우리 동포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가정의 품에 안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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